이 사실 또한 김 주교에게서 들은 대로 적는다.
동란이 일자 주교의 걱정은 관하 신부들과 수녀들의 안부였었다.
그러나 주교 자신이 몇 사람의 신부와 함께 전주형무소에 수감되게 되였으니 장차 어떻게 될 것인고. 주교가 있던 감방이 이층 제일 끝방이었었다.
수감될 때 기도서라고는 한 권도 가질 수 없었고 심지어 묵주까지 압수되어 베잠방이에다 모시적삼 바람으로 수감되었기에 생지옥에 갇힌듯 하였다. 몸의 건강을 잃어 수척하고 구미를 잃어 감방 음식은 한 숟갈도 잘 못먹는 형편이었다.
그 감방에는 신부 두 어분과 냉담교우 한 사람 외에는 근 수십명 미신자들만이 하루종일 한다는 이야기가 음담패설 아니면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담으로 하루 해를 보냈다.
주교는 바람도 쏘일 겸 남쪽 창문을 열고 멀리 치명산을 바라보고 희미하게 보이는 돌십자가를 기도의 대상으로 삼아 일편단심 순교자 루갈다에게 모든 성직자와 수녀들이 무사하고 교회에 피해가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 감방을 지키는 간수는 물론 빨갱이었다. 그 자는 주교와 친밀하여져서 창살로 들여다보면서 곧잘 농담도 주교께 잘 붙여 『주교님 세상이 편안해지거든 천주교에서 경영하는 성심고녀 학생 하나를 색시감으로 소개해주셔요』하면서까지 능청을 부리기도 하였다.
그런후로 그해 음력 8월 16일인가? 그날 밤은 이상스리도 밖게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고 무슨 비명 같은 아우성도 들렸다. 그러나 그날 밤에 빨갱이들이 우리 국군의 반격전에 못 견디어 도망을 가는 날인 줄은 감방에서는 아무도 몰랐다.
수상스러운 분위기속에 쌓인 형무소 아래층에서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와 감방 자물쇠를 여는 요란한 소리가 계속해 들리더니 차차 이층으로 올라와 저쪽 감방에서부터 모조리 호명과 함께 감방문이 열려 수감자들이 몰려나가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드디어 마지막 감방인 주교가 있는 방문을 열고 호명하면서 수감자들을 차레대로 불러내간다. 이때 김 주교는 기운이 없어 겨우 기는듯 걷는듯하면서 감방문을 나와 이층 층계로 내려가려는데 뜻밖에 간수 빨갱이가 주교의 등을 가만이 치면서 귀속말로 『당신은 여기서 내려가거든 맡겨둔 물건을 찾으려고 창고로 간다든지 이리저리 서성대지 말고 똑바로 형무소 정문으로 빠져나가시오. 지금 형무소 정문이 열려있으니 만일 이때 나가지않고 어슬렁대다가는 죽소』하고 일러주었다.
주교는 층층대로 내려가는 신부들에게 라띤 말로 대강 이 뜻을 전하거 층계를 내려 끝장 형무소 정문을 향하여 빠져나갔다
주교는 전동주교관을 찾아간다는 것이 길을 잘못 들어 딴 골목으로 가만가만 가는데 난데 없이 3ㆍ4명의 젊은이가 『당신 누구요?』지금 형무소에서 나오지요?』 라고 윽박질렀다. 주교는 『형무소에서 나가라고 해서 지금 나오는 길인데 왜 그러오?』하고 대답하니 저들은『형무소 감방문을 모두 열어 죄수들을 끌어 내라는 상부의 전화를 잘 못 받고 정문을 열었다는 것이요. 지금 지령이 내려 형무소를 나간 죄수들을 모두 도로 잡아들이라는 거요 갑시다』 하고 막 끄는데, 마침 골목 맞은편에서『어이사 어이사』 대한민국 만세 소리를 지르면서 10여 명의 우익청년들이 몽둥이와 막대기를 들고 달려오는 바람에 빨갱이들은 그만 주교를 내버려두고 달아났다.
우익 청년들은 주교에게 대강 사실을 알고는 전동으로 가는길을 잘못들었다면서 두서너 사람이 친절히 주교를 전동성당 가까이까지 데려다 주고 갔다.
주교는 간신히 전동성당으로 들어가보니 깜깜한 중에 성당안은 전부 똥 오줌이었고 주교대에 들어서니 발에 밟히는 것은 전부책과 종이 나부래기 였었다. 주교는 이층으로 기어 올라 그만 피곤에 지쳐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찍 깨어 창문을 열고 내다보는데 신부들이 하나씩 찾아 들어 모두 무사한 것을 알게 되고 얼마 후에 수녀들 역시 무사하게 돌아온 것을 알고 반가이 만났다. 주교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것은 우리 루갈다의 돌보심이 틀림없는 일이다 하며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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