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대의 서구역사의 모습은 변혁의 시대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변혁의 조류는 교회자체안에서도 태동하고 있었고 교회는 내적 개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역사적 조건에 있었다.
이냐시오는 1491년「바스코」지방 기무스코아주의 전통적이며 엄하고 완고한「로욜라」성에서 부친 벨트랑ㆍ야네스ㆍ레ㆍ오네스ㆍ이ㆍ로욜라와 모친 마리아ㆍ사엔스ㆍ레ㆍ리코나ㆍ이ㆍ발다 사이에서 11남매 중 맨 끝 아들로 태어났다.(혹은 13자매라고도 하나 기록의 소멸로 정확하지않다) 그는「아스페시아」에있는 성당에서 성세를 받았고 이니고ㆍ데오나즈ㆍ이ㆍ로욜라라 불렸다. 이 이름은 아마 베네딕또회의 성이 이니고ㆍ데ㆍ모나를 존경하는 뜻으로 붙여진것 같다. 이 이니고라는 이름은 1537년의 한 편지에서 처음으로 이냐시오라는 이름으로 서명한때 부터 이니고는 이냐시오로 바꾸어 쓰게 되었다. 이냐시오(Ignecio)가 이 이름을 택하게 된 이유는 그가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Ignecio)에게 각별한 경모를 바치고 있던 것으로 알고있다.
준엄한 산과 풍요한 목초 그리고 넘쳐흐르는 개울로 싸인 아름다운「바스코」지방에서 소년 이니고는 소년기를 보냈다. 이냐시오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때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이냐시오의 나이 16살때 사망했다. 아버지 벨트란은 그가 죽기전 그의 친구이며 궁전 회개 겸 사원장 요한벨라스케스 데 쿠엘라트에게 이냐시오를 위탁하여 교육을 받게했다. 여기서 이냐시오는 궁전예법과 관습 등을 익히게 되었다. 이 무렵 이냐시오의 이상이나 경향은 신심이나 교회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중세풍의 화려한 기사생활의 영광에 강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사치로운 옷을 입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곱슬머리에 진홍색의 모자를 썼으며 허리에는 장검과 단도를 차고 군사훈련에 열렬했던 이냐시오는「명예를 얻기위한 크고 공헌한 욕망」으로 채워진 청년이었다.
그러나 한 때의 명예와 영광의 이상은 1521년 5월 20일 불란서군과의 「팜프로나」전투에서 오른쪽 발에 부상을 입고「로욜라」성에 후송되어 치료 도중 지루한 나날을 메꾸기 위하여 루돌프의 「그리스도의 생애」와「성인들의 꽃」이라는 두 권의 책을 읽고 지금까지 기사로서 출세하고자 했던 욕망은 이제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자가 되리만큼 그의 마음은 변화되기 시작했다. 이냐시오는 10개월간의 지루한 부상에서 치유되자 1522년 3월「예루살렘」순례길에 올랐다. 전과같이 화려한 기사복을 입고 나귀를 타고「아란자즈」로 향해 남쪽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하룻밤 성모경당에서 머물고 15일후에는「몬세랏트」의 베네딕또회 수도원에 도달했다. 그는 순례자가 입는 남루한 옷과 띠와 신을 구입하여 3월 21일 베네딕또회 수도원에갔다. 3월 24일 이냐시오는 성스러운 영성지도자인 쟌 데 샤논느에게 총고백을 했다. 이냐시오는 자기가 타고온 나귀를 이 수도원에 기증하고 그가 차고있던 장검과 단도를 성모당에 바치도록 샤논느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순례자의 옷으로 갈아입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성모제단 앞에서 밤새 기도했다. 다음날 3월 25일 성모영보축일 새벽에 이냐시오는 미사에 참예한후「몬세랏트」를 떠났다. 그는「로욜라」성에서 얻었던 회심의 시기부터 자신이 받은 감명깊은 사건들을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는데 2, 3일「예루살렘」순례의 길을 연기해서 이 기록을 하고자「몬세랏트」에서 약 20마일 떨어진 「만내사」로 갔다「만내사」에서 2,3일간 머물 예정이었지만 거의 1년이나 있었다.
이냐시오가「만내사」에 머무르는 동안 그의 화려했던 기사의 위품과는 달리 남루한 걸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매일 문전걸식으로 생활하는 가하면 병원에서 신음하는 환자들을 간호하고 거의 매일 일곱시간에 걸쳐 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의 육체적 극기는 엄하고 두려울 정도였다. 이러한 생활 가운데서도 그의 내적 기쁨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위안도 항구하지 못했다. 한때 그의 영혼을 엄습해오는 지난날의 죄의 두려움과 공포로 자살까지 할려는 마음을 갖기도 했다. 이 무서운 유혹을 물리치기 위하여 그는 단식을 시작했다. 일주일의 단식이 지난후 그는 지난날의 죄의 참회에서 새로운 높은 신비의 경험으로까지 도달했다. 이냐시오는 어느날「가르더너」강변에 있을 때 홀연히 대오(大悟)하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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