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길거리를 서성대는 수많은 재수생들을 보며 많은 이들이 사회문제로 취급하고 걱정을 하고 있으며 한편에서는 일생을 바쳐 고시합격을 위해 귀한 청춘을 내맡기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허다합니다.
간혹 여기서 불량배들이 생기기도 하고 고시에 떨어져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하는 사람들도 허다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많이 보시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을 도외시하기만 해서 될까요? 바람직한 한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어른들이 취해야 할 바는 무엇일까요? 이들에게 냉대를 주기보다는 용기와 신념 그리고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강력히 주장할 수 있는건 제가 이런 경우에서 올바르게 자랄 수 있었던 때문이겠습니다. 뼈저린 경험에 의한 말인 만큼 부모되서는 여러분들께 자녀를 잘 키우시기 바라며 말씀 드립니다.
저희 가정은 퍽 가난했지요. 어머님과 아버님이 날품팔이를 하면서도 저희 4형제의 교육에는 어찌나 열의가 대단하신지 모두들 일류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장남인 저는 이런 부모님의 정성으로 고등학교을 졸업했으나 대학을 두번이나 떨어졌습니다.
가난에 고생하시는 부모님 앞에 면목이 없던 심정이란 오죽했겠습니까? 그래도 두번씩이나 재수를 하면서 가정교사를 하여 세번째 시험에서 좋은 대학엘 들어갔읍니다. 철학과에 입학을 하였으나 원래 저의 목표인 사법시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던 중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행정과에 근무하게 되어 고시공부는 틈나는대로 해나갈 수 있었읍니다. 집안에서도 별일없이 동생들이 학교도 잘 다니고 잘 자라서 앞으로 제가 고시만 합격하면 집안일이 술술 풀릴꺼라며 가족 모두가 희망에 부풀었었습니다. 그렇지만 왠일인지 우리 가정에 암운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연속되는 불행을 안겨다주는 것이었습니다. 군복무중 저는 그만 늑막염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동외과병원에 3개월이나 입원을 했고 다행히 병은 거의 치료가 되었지만 의사의 말은 절대 과로를 피해야지 잘못하면 결핵이 걸릴것이라는 경고를 받아 조심스레 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 병이 완쾌될 무렵 집에서는 일대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뇌졸증으로 갑자기 쓰러지신 후 의식을 잃고 산소호흡기에 의존하여 겨우 생명만 부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보를 받은 제가 급히 집으로 달려갔으나 별도리 없는 일이었습니다. 의사는 가망이 없으니 포기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계속 충고해 왔지만 저와 어머니의 강력한 주장으로 가산을 모두 털어 아버지 병 치료에 보태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쓸데없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나마 몇 푼 있던 재산을 모두 날렸음에도 아버지는 정신도 못 차려보신채 돌아가시고 만것입니다.
그러나 당장 먹고 살 일이 막연한데도 그 숱한 돈이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좋은 세상 제대로 복도 누려보지 못하시고 가신 것이 가여울 따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귀대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제대를 했습니다. 어머님과 동생들의 격려로 고시공부는 여전히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내 앞에 보인것은 또 하나의 불운이었습니다. 어머님이 겨우 운영하시던 영양센타가 사기꾼에게 당하여 빈손으로 나서게 됐고 어머니는 할 수 없이 길거리에서 빈대떡 장사를 하시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출가한 첫째 누이동생이 남편을 사별하고 갓난 조카아이를 업고 비좁은 친정집 신세를 지고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붙들고 울 겨를도 없었습니다. 우선 동생을 학교에 계속 보내고, 집안 살림살이를 제대로 이끌어 갈 것이 문제였습니다. 가족이 모두 둘러앉아 회의를 하며 새출발 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일터에 나갈 것을 작정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장사를 그대로 하시고 저는 3년간 고시공부를 중단하고 직장을 갖게 되었습니다.
출가했던 큰 누이는 미장원에 다니게 되었고 둘째 누이도 직장을 가졌습니다. 막내만 열심히 공부하면 되었지요.
서로 마음을 화합하니 슬픔은 잊을 수 있었고 우린 가능한 한 최대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계획대로 피나는 노력끝에 가난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금 고시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큰 누이는 조그만 미장원을 하나 차려 따로 날 수 있었고 둘째누이는 결혼하여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막내는 우등생으로 학교를 마치고 무사히 대학에 합격하게 되어 우리 가정엔 또다시 희망의 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저는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근본적인 나의 목표가 여기 있었음을 재삼 느끼고 돈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공부하던 중 고등고시 볼 마음을 행정고시로 돌려 노력한 결과 저는 작년 5월 21일 제15기 행정고등고시 제2차 시험에 합격하여 뜻하던 바를 이룬 기쁨을 받아 쥘 수 있었습니다.
생각하면 불우한 환경, 약질의 몸으로 어떻게 그 힘든 시간들을 견디어왔나 신기할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끈기와 집념 그리고 곧은 마음으로 목표에 도전한다면 마침내는 원하는 바를 이룰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가난의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시며 우리들이 원하는 바를 힘껏 밀어주신 부모님의 은혜로 이만큼 자랐다고 생각하며 더없는 감사함에 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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