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솔부는 가을바람 창 앞에 속삭이면 무성하던 나뭇잎도 우수수 진대요/고향에 계신 울 엄만 안녕하신지/나뭇잎을 모아서 편지쓸까봐/솔솔부는 바람에 실려 엄마한테 가라고.
전남 광주에서 열리는 호남예술제에서 맹인인 제가 피아노 반주를 하고 역시 맹인인 제자가 노래를 불러 많은 시민의 갈채를 받았던 제가 작사 작곡한 노래의 가사입니다.
연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목포 맹아학교에서 앞 못보는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가르쳐주는 음악선생입니다.
39년을 살아오면서 눈 뜬 사람들에 지지 않으려고 피나는 노력을 한 결과, 저는 지금 아무 부러울 것이 없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만족스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대학을 마칠때까지 오히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지만 할아버지의 박대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 지방 일대에서 유지로 이름 나 있던 할아버지가 외아들인 아버지에게서 얻은 손자가 겨우 눈 먼 장님이었으니 할아버지도 역정을 내실만도 했겠지요. 창피하니 사람들 눈에 못 보이게 하라는 할아버지의 엄명을 받고 저는 여섯살이 될 때까지 네모진 골방에서 자라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자신이 맹인인지도 몰랐었습니다. 그것을 알게된 것은 할아버지 몰래 엄마와 밖에 처음나와 보드라운 풀포기를 만져보았을 때였습니다. 딱딱한 벽만이 세계의 전부인줄 알았으니까요.
아버니는 저를 떳떳하게 키워보신다고 무진 애를 쓰셨습니다. 갖다 버리라며 호령하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가슴이 찔리워도 자식을 위해 못할 것이 없었습니다.
맹인학교 초등부에 들어가 저는 2등을 했습니다. 자랑스런 마음으로 아버지께 성적을 내보였을 때 아버지는 뜻하지 않게 몹시 노여워하시며 제 다리에 피가 맺히도록 종아리를 치셨습니다.
『이 녀석아 이따위 정도로 어떻게 눈 뜬 사람들과 경쟁을 하겠다는거냐 헬렌켈러 정도의 의지가 있어야 해!』
이후로 저는 계속 일등을 했습니다. 중등부 고등부를 마칠때까지 이렇게 이끌어 주신 것은 바로 이 눈물겨운 아버지의 매질하시던 말씀이었습니다.
6ㆍ25가 터진 것은 초등부 6학년때의 일이었습니다. 학교도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고 우리 가족도 달구지에 짐을 싣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습니다.
동생을 잃은 것이 바로 이때였습니다. 동생은 정상적인 신체를 지니고 태어나 부모님의 위안이 되었었는데 피난길에서 길을 잃었지 않았겠습니까.
음악에 열의를 갖게 된 것은 중등과에 입학한 후부터 였습니다. 피아노 소리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선생님 몰래 피아노를 치곤 하다가 들킨적이 있었습니다. 벌벌 떠는 제게 오히려 선생님은 음악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분이 제 음악생활의 길잡이가 되어 주셨습니다.
천부적인 재질을 타고난 저는 연주를 하고 싶었지만 맹인인 까닭으로 작곡과를 택할 수 밖엔 없었습니다. 기적처럼 대학에 입학한 후 반친구들과 교수님들의 호의속에서 무사히 졸업할 수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기쁜 것은 2등으로 졸업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금의환향하는 자랑스러움으로 고향에 돌아왔을 때 내겐 어린 동생들밖엔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사업하시다 실패하여 지금은 서울 어느 싸구려 여인숙에서 봉투를 만들어 팔면서 겨우 연명하시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의와 고통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마셨습니다.『내가 네게 피아노 한 대도 못 사주고 떠나다니...저 세상에 가서라도 네 음악발표회엔 꼭 찾아가마』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몰락한 집안을 도울 결심으로 저는 목포 맹아학교 음악선생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박봉에 시달리긴했으나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가르친다는 보람으로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라나는 새싹인 아이들에게 항상 이 말을 하지요. 제가 어릴적에 들었던 가장 용기를 주었던 말을─
『여러분 여러분에겐 열개의 눈이 있습니다. 보이지않는 두 눈 대신에 열개의 눈이.
하느님께선 앞 못보는 우리들을 위해 열개의 눈을 주셨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의 눈은 열개의 손가락입니다. 여러분은 눈 대신에 글을 읽을 수 있는 귀중하고 특별한 손의 눈을 가진것입니다』
맹아학교에서는 다른 학교와 다름없이 똑같은 과정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미술시간이 없다는 것이라고 할지─
사회에 호소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제공해 주시고 다른 사람과 평등하게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맹인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인간입니다. 안마장이나 침장이 정도로 몰락시키지 말고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베풀어 달라고 호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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