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 년 전 저녁 시외버스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곳은 내 고향이며 후에 안 일이지만 그녀에겐 아직 낯선 제주도에서이다.
아직 시내까지 버스가 닿으려면 한 시간 가량 남은 조그만 읍에서 고만고만한 또래의 여학생 대여섯이 몹시 만원 된 차를 타느라고 애쓰는 모습이 가엾어서 나는 차창으로 손을 내밀어 그녀들의 손에 저마다 들고 있는 조그만 바구니를 받아 주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으슥해서야 바구니 임자들은 내가 앉은 옆 통로로 비집고 들어왔다.
『저의 친구 엄마를 장사 지내고 오는 길이예요』
묻지도 않았는데 그들 중의 한 소녀가 가볍게 목례하고 내게 말을 건네었다. 정말 바구니를 들춰 보니 떡이 소복히 담겨 있었다.
『이것 먹어도 괜찮습니까?』
나는 송편 한 개를 집어 들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말을 던졌다. 그때 아주 조그만, 그러나 너무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사실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자세를 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어머, 해군사관학교 생도는 국제 신사라더니…』
그때서야 다른 학생들도 내 차림을 주의해 보며 뭐라고 소근댔다.
그때 나는 아직 옷에 풀기도 가시지 않을 만큼 아주 조금 생도생활을 했던 일 학년짜리 병아리였으며 겨울방학을 맞아 고향에 갔다가 친구네 과수원에 놀러 갔다 오는 길이었다.
그리고는 별 이야기 없이 한참을 갔다.
『얘, 정말 괜찮겠니?』
그 여학생들은 자기들 중의 누구에게 자주 이렇게 묻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거의 무관심한 표정으로 꼿꼿이 앉아 있었다.
『괜찮대두 걱정하지 마』
바로 내게 핀잔을 주었던 그 목소리였다.
왜 그 목소리가 내 귀에 그렇게도 강하고 가엾게 들렸을까?
그러나 왜 그 목소리는 그렇게 맑고 또 곱다고 생각했을까?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좀이 쑤셨다.
물론 줄곧 다섯 시간 동안 버스 속에 앉아 있은 탓도 있었겠으나 그것보다도 어디가 편찮은 것 같은 그 목소리를 나는 내 자리를 양보해서 앉혀 주고 싶었다. 실상 그럴 용기가 해군사관학교의 자랑스러운 생도이면서도 내게는 없었다.
그 꼬맹이 여학생들에게 나는 나의 가장 중요한 것을 전부 앗긴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그 여학생들에게 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다. 오직 그 목소리에 라고 하는 게 더 옳을 것 같다.
시내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나는 친구네 과수원에서 덤으로 얻은 것까지 합쳐서 귤을 담은 6kg짜리 상자가 네 개나 되었다.
과히 무거운 중량은 아니었으나 두 손에 들기는 부피로 해서 좀 힘겨웠다. 엉거주춤하게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서 내려 보니 그 여학생들은 아직도 한 귀퉁이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들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네었다.
『무슨 볼일이 아직도 남았습니까?』
좀 농담기 섞인 나의 질문에 그녀들은 약간 당황한 수선스러움을 피우더니 앞을 조금 열어 주었다.
한 소녀가 다른 소녀에게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었다. 물론 조금 전 버스 속에서의 그 목소리가 어떻게 된 거로구나 하는 걸 곧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아직 열아홉 살밖에 안 된 어린 청년이었다.
그러니까 내 감정은 아직도 규칙이 지배하지 못한 영역에 속해 있어서 사관생도의 그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내것 오직 내것이었다.
용광로처럼 달아오를 수도 있고 화산처럼 폭발할 수도 있고 또 소나기처럼 나의 온 감정을 퍼부어 내릴 수도 있는 이런 무한대한 아름다움이 내것이라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몰랐던 시절이 바로 그때였다.
나는 도와 주고 싶었다.
될 가능성을 점 치든지 하는 건 그 나이의 나에겐 있음직한 일이 못 된다.
그래서 나는 그 목소리를 위해 마구 어떻게 무엇을 하고픈 충동에 사로잡혀서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좀 정신이 든 그녀가 택시에 탄 후에 도어를 닫아 준 것뿐이었다.
정말 시시하게-그런데도 실상 나는 마음이 뿌듯했다. 참으로 이상한 밤이었고 또 헤아릴 수 없는 내것들의 움직임이었다.
『저희들이 도와 드릴까요?』
앓은 친구를 택시에 태워서 떠나 보낸 뒤에 홀가분해진 그녀들과 나는 나란히 정류장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힘이 쭉 빠져 버린 허탈감이 갑자기 엄습해 와서 나는 거의 신경질적으로 귤 상자를 떨어뜨리고 말았을 때 그녀들은 친절하게도 내게 호의를 보여 준 것이다.
『감사합니다. 저는 방향이 서쪽인데요』
『우리들은 모두 동쪽이예요. 뭐, 그래도 좋으시다면…』
정류장에서 일 킬로미터쯤 떨어진 우리집까지 그녀들과 나는 재미있게 걸었다. 장례를 갓 치르고 오는 소녀들답잖게 명랑했으며 몹시도 기분 좋게 재잘거렸다. 말똥 구르는 것만 봐도 웃는다는 그 나이, 나는 남자니까 그녀들의 입만큼은 가볍지 못하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현관을 썩 들어섰을 때 떠들석한 우리 일행에 어머니는 좀 놀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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