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복음화의 태도
오늘의 복음운동을 깊이 생각할 때 그 내용과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복음운동을 하는 주체(主體)로서의 하느님의 백성의 태도가 더욱 큰 문제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메시아적인 백성으로서의 복음 선교에 대한 쇄신된 비젼을 가지고 새로운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선교활동의 고유의 방법을 쇄신하지 못할 뿐 아니라 복음화의 올바른 내용도 선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2차「바티깐」공의회는 인간 존중의 태도를 교회의 기본적인 자세로서 명백히 내걸고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에서 인간적 멸망 인간의 문화 종교상의 제가치 지상적인 제문제를 안고 있는 인간 세계의 고려(考慮)를 통한 복음 선포를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복음화에 있어서 인간의 삶은 속에 깊이 파고들어가 인간적으로 복음의 씨를 심기 위해 인격적이고 사회적인 새로운 태도를 취할 것을 바라고 있다. 공의회는 또한 복음운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헤어진 그리스도교의 형제들과의 협력 일치를 강조하고 개인들뿐 아니라 교회 사이에도 에큐메니칼한 신앙의 정신과 협력에의 의욕을 가톨릭적 일치와 성성(聖性)의 신비로 뚜렷히 나타내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교 이외의 종교생활을 이해하고 인간의 인격을 높이며 평화를 지키기 위해 타종교와의 협력 태세를 강구토록 새로운 대화의 태도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① 교회의 태도
교회가 복음화의 새로운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서는「세상의 박해와 하느님의 위안 속에 여정을 계속하는 교회」(敎會8)로서 복음의 원점에서서 복음적 가난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가난의 영성에 충만된 교회는 어떠한 권력이나 부력에도 유혹을 당하지 않고 가난하고 억압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 편에서서 희망의 미래를 제시하는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된다. 뿐 아니라 그 교회는 가난과 고통을 감수하면서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사명인 복음화 사회의 완성을 위해 봉사와 희생의 모습을 드러내고 교회 자체의 생명으로 새로운 구원의 길을 마련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한국 교회는 이 점에 대해서 만족할 만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 봐야 하겠다.
가난의 영성이 결여된 교회는 복음의 정신을 잊고 가난의 태도를 버리고 특권적 교회가 됨으로써 하느님의 종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자처할 수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교회는 복음화 운동에 열의를 가지지도 못할 것이다.
물론 교회는 죄 많은 인간의 공동체로서 고민을 안고 순례하는 교회인 까닭에 회심(回心)을 통해서 끊임없이 쇄신하는 창조적 모습을 되찾을 때 복음운동에 매진하는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② 그리스도의 태도
복음화 운동에 있어서「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은 어디에 살고 있든 생활의 모범과 말의 증거로써 영세 때 지닌 새 사람과 견진으로 힘입은 성사의 능력을 나타내야 한다」(宣敎11)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박해를 받는 의인(義人)」이라는 소명의식을 확고히하고 부조리한 인간 사회에 복음에 따라서 의미를 제시하는 예언자적 태도를 굳게 견지해야 한다.
현대 사회의 복음화는 현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끊임없는 항의를 사람들에게 보지(保持)시켜 복음화 사회를 건설하는 것임으로 그리스도인은 부조리의 적으로서 복음의 정신에 사는 의미의 예언자가 되어야 하겠다.
둘째 복음의 씨를 사람의 마음밭에 뿌리는 데 있어 복음적 형제애에 타당한 대화의 태도를 지니어야 한다. 모든 신자는 주님의 사랑을 믿고 체험하여 인간답게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으로 대화를 함으로써 주위 사람과 사귀며 복음의 메시지를 겸허한 기분으로 선포해야 한다.
③ 외국인 선교사 태도
지난날 외국인 선교사를 그리스도교 국가의 교회로부터 파견된 자로서 포교지에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라고 보아 왔다. 선교사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파견하는 선진국으로 구분되는 서구의 우위성(優位性)이 의식구조에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선교사는 서구 세력의 신장과 시기를 같이하여 그 정치적 경제적 권력 밑에 들어왔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해서 한국 교회에 있어서도 선배 외국인 선교사들의 순교정신에 의한 혁혁한 공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선교사는 외국인으로 끝끝내 한국에 동질화된 적응을 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외국인 선교사는 한국에 적응하려고 온갖 노력을 했고 또 하고 있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한국의 언어 습관을 연구하여 모방함으로써 한국인 같다고 할 수 있을망정 결코 한국인이 될 수 없다.
문제는 한국의 종교 풍속 습관은 전혀 이해하고 문화적 윤리적 종교적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고 한국인을 진실하게 좋아하는 데 있다.
진정한 한국인을 좋아한다는 것은 민족적 우월의식을 버리고 복음적 형제애로 그리스도 안에 일치하는 것이다.
특히 오늘의 교회는 이산(離散)된 교회로서 세계를 그리 그리스도교의 나라와 선교지로 2분할 수 없는 형편에 놓여 있다. 과거의 외국인 선교사의 덕택으로 복음은 어디에나 뿌려져 그리스도교 신앙을 모든 민족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국인 선교사는 한국인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신도들과 형제로서의 공동 책임을 자각하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복음적 형제애가 충만된 공동체를 형성하여 교회 생활 전체가 선교활동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다.
더욱이 오늘의 선교는 선교사만이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교회가 선교하는 까닭에 방인 성직자 수도자 신도와의 인간미가 넘쳐흐르는 공동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의 모든 신자들도 좀 더 외국인 선교사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한국의 복음화 사회를 위해 전력을 경주하도록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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