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는 정신적 종교운동만이 아니고 인간에게 주어진 구원의 길이므로,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동시에 이 나라가 구체적 공동체가 되도록 서서히 준비하셨고 성령강림으로 이 나라는 교회공동체로 선포되었다.
열 두 제자 선택
예수께서 선교생활을 시작하신 후로 그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왔고(마르1, 15) 일부는 어디에나 그를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루가19, 37). 그 중에는 선교하러 파견된 72 제자도 있었고(루가10, 1~11) 생명의 빵에 관한 설교를 이해할 수 없어서 그를 떠나버린 제자들도 있었다(요한6, 66). 여하튼 예수승천 후에 예루살렘에 모인 제자들만 1백20명이나 되었다(사도1, 15).
주님은 그들 중에서『당신이 마음에 두셨던 사람들을 부르시어 열둘을 뽑아 사도라 부르셨다』(마르3, 13~14). 사도는 파견된 자 또는 대리자, 중개자들 뜻한다. 주님은 그들을 항상 곁에 두시고 특별히 교육하셨는데 종말에 관한 설명(마르13, 3~13), 이혼에 관한 계명 등(마르10, 10~12)이다.
또 당신의 거룩한 변모와(마르9, 1~13) 최후만찬과(마르14, 22~26) 겟세마니 동산과(루가22, 39~50) 부활승천의 장면에서(루가24, 36~53) 사도들이 목격증인이 되도록 동반하셨다. 이렇게 주님은 사도들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시고 교육하시어 장차 설립될 교회의 핵심적 임무를 맡도록 준비시키셨다.
교회설립 약속
드디어 예수께서는 가이사리아에서 사도들 특히 베드로의 신앙을 다짐받으시고 교회 설립을 약속하셨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터인즉 지옥의 문이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16, 17~18). 그리고 베드로와(마태16, 19) 사도들에게(마태18, 18) 교회를 지도할 권리와 책임을 맡기셨다.
이렇게 예수께서 세심한 배려로 12사도까지 선정하셨으나 성경에는:교회가 구체적으로 발족한 기록이 전혀 없다. 교회를 많은 종교단체 중 하나로 보는 사람에게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단순히 좋은 인생훈(人生訓)을 펴는 단체가 아니고, 이스라엘을 계승하고 완성하는 하느님의 백성이며, 예수의 피로써 맺어지는 새로운 계약으로 형성되는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다.
그래서 주님은 교회 설립을 약속하신 직후에 당신은 미구에 유대인 지도자들에 의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시고, 제자들도 스승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예고하셨지만(마태16, 21~28)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므로 두 번(마태17, 22~23) 세 번(마태20, 17~19) 같은 예언을 되풀이 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죽으심의 이유도 설명하셨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러 온 것이다』(마태20, 28:마르10, 45).
주의수난 예고
마침내 주님은 최후의 만찬에서(마태26, 17~29) 당신의 수난의 의미를 설파하시고 그 수난의 기념제를 미리 설정하셨다. 주께서 친히 떼어 주시는 빵은 내일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당신의 몸을 의미하고 나누어 마시는 포도주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흘리실 피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구약의 백성들은 짐승의 피로써 야훼께 속죄의 제사를드렸으나 예수께서는 자신의 몸과 피를 바침으로써 인간의 죄를 대속(代贖)하시고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새로운 계약을 맺으셨다(히브9, 12~15). 이런 의미에서 최후만찬에서『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루가22, 20)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상의 죽으심은 최후만찬에서 설명하신 바를 실천하신 것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루가22, 19) 하신 명령은 단순히 주의 만찬 절차를 되풀이 하라는 것이 아니고, 그런 절차를 통하여 십자가상의 죽으심을 다시금 오늘의 역사 안에 성사적으로 재현하면서 주님의 수난에 우리가 동참하라는 명령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 자체는 그의 구세사명의 종착점이 아니다. 그분은 죽으신 후 3일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죄악과 죽음을 이기시고 그의 인간성까지도 성부의 영광에 참여하시어 우리 인간들의 완전한 해방인 구원을 이룩하셨다. 그래서 그는 우리의『주님이시요 그리스도이시며 영원한 사제가 되셨으며』(사도2, 36:히브5, 6)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골로1, 18~20). 부활하신 주님은 당신이 세우신 교회를 생생하게 보존하시고 인도하실 성령을 다시금 약속하셨다(루가24, 49).
성령강림 약속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경험하고서도 아직 신앙이 빈약하던 사도들은 성령을 받고서(사도2, 1~4) 비로소 주님의 교훈과 행적의 의미를 확실히 깨닫고 굳은 신앙으로써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사도2, 14~36). 성령강림 당일에 많은 유대교인들이 세례를 받았는데 사도행전은 3천명이나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사도2, 37~42).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전하면서 주로 베드로와(사도1~12장) 바울도의(사도13~28장)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서술 전체에 공통된 특징은 모든 일화를 통하여 성령께서 신생교회를 얼마나 힘차게 가시적으로 인도하고 계시는지 보여주는데 있다.
초기 공동체의 관심사는 복음의 선포였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 내용은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가 예수 자신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즉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을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우리의 주님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지상에 실현된다는 것이었다(사도2, 26:3, 13~16:13, 30~33:38~39).
교회공동체 형성
성령으로 충만한 사도들과 신입신자들은 서로 형제라 부르면서(사도1, 15:9, 30) 공동기도와 공동식사를 하고(사도2, 44~47)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사도2, 38) 안수로써 성령을 받아(사도8, 15~18) 선교에 힘썼다. 그 결과『하느님의 말씀이 줄기차게 퍼져 나갔으며』(사도6, 7:12, 24) 유대인 개종자와 이방인 개종자들로 구성된 안티오키아 교인들은 최초로「그리스도교인」이라고 불리었다(사도11, 26).
비평가들이 초대교회의 신속한 발전상을 아무리 종교사회학적 자연현상이라고 우길지라도, 또 그리스도교를 유다이즘과 헬레니즘의 절충이라고 주장할지라도, 초대교회의 경이로운 발전과 생활의 변혁을 가능케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의식을 설명하지 못한다. 성령의 활동만이 신생교회의 놀라운 생명력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다.
정하권 <몬시뇰ㆍ대구가톨릭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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