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의 사도교회는 복음서를 쓰면서 구원 교리의 제1단계를 세례성사로 제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수의 포교생활 시초부터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여러가지 각도에서 가르쳤음을 힘주어 역설하고 있다.
우선 니꼬데모와의 대화에서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영성세계와 물성세계를 대조하여 가르치셨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사람이 영원히 살기 위하여 살아있는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이 살이있는 물은 하느님의 선물로서 이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가르치신다.
세속에서 우물물을 마시고 살아온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도 모르게 영원한 생명수를 달라고 청원한다. 니꼬데모나 사마리아 여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며 그들에게 이 교리를 가르쳐 제자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아무라도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이 교리를 받아들여야 하고 그 물을 갈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음 장에서는 제자들에게 영원한 음식물에 대한 가르침을 펼 것이다. 예수와의 대화는 언제나 모험을 요구한다. 대화를 하다 보면 자기생각에 집착하느냐 아니면 예수의 생각에 빨려들어 가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자기 생각을 버리기로 결정하고 나면 모든 자기 개인의 문제는 예수의 문제가 되고 만다. 여기에서는 자기의 개인 생명에 집착하느냐 아니면 하느님의 생명을 택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제자들이 예수와 대화할 때는 부모형제ㆍ처자와 재산까지 버리고 예수를 따르느냐 하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리고 한 번 예수의 생각을 선택하고 나면 예수의 문제가 이제는 나의 문제가 된다. 이 선택은 빛의 세상을 사느냐 어두움의 길에 방황하느냐의 결과로 귀결되고 만다.(요한19~21)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께 목마르지 않는 물을 청했을 때 예수께서는 그녀가 암흑에서 빠져 나오기를 재촉하셨다. 그래서 느닷없이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신 것이다.
그녀는 다섯 번이나 남편을 바꾸었고 그나마 다섯 번째는 정식 남편이 아니었다. 네 사람의 남편이 죽었는지 아니면 네 번 소박을 당했는지 알 수 없지만 랍비들이 가르치는 그들의 율법생활에서는 세 번까지 재혼할 수 있었다. 그러니 여자의 생활은 확실히 어두움의 생활이었다.
이 여자는 자기의 사생활을 꿰뚫어 보는 대화자의 지적을 그대로 시인하고 예수를 모세와 같은 예언자라고 신앙고백을 하였다. 잘못을 뉘우치고 빛으로 나올 기미가 엿보였던 것이다.
성서해석 학자들은 이 여자의 다섯 남편을 사마리아인들이 그 옛날 앗시리아 왕의 침공을 받고, 이방인 다섯 민족이 도입한 다섯 우상을 숭배해 온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했다. (열왕하17, 24 이하) 사마리아 여인의 어두운 개인 생활이든 과거의 길이 어두웠더라도 이제는 예수께서 제시하는 빛의 길을 받아들이고 고분고분한 마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이 고분고분해진 것은 그녀가 예수를 부르는 말에서 알 수 있다. 그녀는 예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이라고 번역된 이 말의 그리스 원어는「기리에」이다. 이 말은 사회생활에서는 그저 선생님이란 뜻이지만 이 복음서를 쓰던 초대교회에서는 교회가 신봉하는 부활하신 「주님」이란 뜻으로 썼다. 복음사가 요한은 이 여자의 심성을 표현하는 말로 「기리에」라는 말을 쓴 것이다.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는 시온산(유대아인들의 성산)이다.
게리짐산(사마리아인들의 성산)이다 라고 불필요한 다툼질을 하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세상 어디에서나 어느 때나 진실된 마음으로 하느님을 공경하고 찬미할 때가 온 것이다. 우상숭배에 젖은 사마리아인들과는 달리 유대아인들은 구약성서의 정통성을 지켰고, 또 구세주가 유대아인에게서 나온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22절의해석) 구약의 율법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자랑삼을 수는 없다. 하느님은 영적으로 참되게 당신을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영적으로 참되게」는 무슨 뜻인가? 원문은 「영과 진리 안에서」이다. 예수님의 의도는 「외부예식으로가 아니고 마음속으로」라는 그런 뜻이 아니었고, 하느님의 성령을 받으라는 뜻으로 말씀하셨다. 「영과 진리」라는 표현은 증언법 (重言法) 이라는 헬렌문화적인 표현으로 영적인 진리라는 표현을 두 명사에 포개어 표현한 어법이다. 진리의 정신으로라는 뜻이다. 진리의 종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 들이고」라는 뜻이다. 이 표현은 요한 복음서에서 줄곧 나타나는 라이트모티브 「위로부터 온」이라는 배경에서 알아들을 필요가 있다. 요한 복음서는 끊임없이 진리의 성령을 신자들에게 강조하셨고(요한14, 17:15, 26) 그 성령은 하느님의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신자들에게 부어주는 성령이며(요한8, 45:18, 37)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느님의 진리(요한14, 6)라는 것을 깨우쳤다.
그리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초대교회의 기본적인 교리였다. (요한3, 5:로마8,15~16) 이 진리만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하게 하며 이들을 거룩하게 만들 것이다.
이 진리는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아가 가르쳐주는 진리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한 이 말은 사마리아인 답지 않은 말이다. 초대교회가 구약성경의 예언을 믿는 말이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요한 복음서에서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할 때 쓰는 말이며 이말은 모세가 하느님께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물었을 때 대답하신 하느님의 이름이다. 원어로는 「에고 에이미」이다. 「나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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