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문경에서 사목을 하던 나는 48년 비산본당 주임으로 옮기게 되었다. 문경에 있을 때는 문경과 이웃한 상주에 서정길 신부가 주임으로 있어 가깝게 지냈다. 상주로 오기 전 교구청 경리담당ㆍ효성국민학교 교장을 지냈던 서 신부는 건강이 안 좋아져 휴양을 겸해 상주에 와 있었던 것이다.
하야사카 주교 선종 후 주재용 신부가 감목으로 부임, 사목을 하다 건강문제로 사임하자 노기남 주교가 서울 대목구와 겸임으로 대구감목을 맡게 되었다. 이때 노 주교님은 서정길 신부와 나를 참사위원으로 쓰기 위해 계산동ㆍ비산동본당으로 각각 전보발령 시켰다. 이로써 나는 48년 6월 비산동본당 제8대 신부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비산동본당은 1927년 날뫼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한, 계산성당에 이어 대구에 세워진 두 번째 본당이었다. 비산동으로 옮긴지 몇 달 안 되어 동창이었던 최덕홍 신부가 대구교구 6대 감목으로 피명되었고 한 달 후 대구대목구 한국인 첫 주교로 임명되었다.
나보다 두 살 적었던 최 주교는 서품 후 제주도에서 10여 년 동안 사목을 한 후 신학교 교수로 있다가 교구장 임명시에는 목포본당 주임으로 있었다. 그때 최 주교는 주교임명 소식을 듣고 동창신부들에게 편지를 써서『내가 주교를 해야 하나』라고 의견을 물었다. 물론 동창신부들은 전부 대환영을 했고 주교가 되면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격려해 주었다. 총명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먼저 죽어 아깝다.
비산동본당에 있는 동안 나라는 매우 어수선했고 좌ㆍ우익 세력의 대립으로 신자들 간에도 의견충돌이 심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대구교구는 49년 6월 남북통일기원 성체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성모당에서 열린 성체대회에는 대구 시내 5개 본당(계산, 남산, 비산 삼덕, 신암) 신자 1만 여명이 모여 성황을 이루었다. 성체를 통해 남북통일과 북한에서의 종교자유를 기원하고자 열렸던 이 대회는 당시 분단의 위기가 감돌고 있던 우리나라의 상황을 염려하고 이를 기도로 극복하고자 했던 신자들의 마음이 모여진 뜻깊은 대회였다.
세계성체대회를 앞두고 통일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요즈음 그때의 남북통일기원 성체대회를 생각하니 감회가 깊다.
비산동에서 1년 8개월을 지낸 나는 50년 2월, 당시 왜관본당 주임으로 있었던 김재석 신부가 건강을 잃어 요양차 본당을 떠나자 그 후임으로 가게 되었다. 그때 왜관본당은 순심학교를 관할하고 있었고 교우도 많은 편이었다. 신자들도 똑똑해서 대구의 어느 본당보다 수준이 높았다. 그래서 주교님은 적당한 후임자 물색에 고심하셨고 2~3일간 회의를 하신 후 나를 후임으로 임명하셨다.
당시 왜관본당 주임으로 가게 되면 순심학교 이사장도 겸임해야 했는데 신부가 자주 바뀌다 보니 학교 이사장도 번번히 바뀌는 꼴이라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왜관본당 후임으로 결정된 후부터는 주교님이 이사장을 맡고 왜관본당주임은 이사장 대리를 겸임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왜관본당에서의 2년 4개월은 그야말로 다사다난(多事多難)이었다. 6ㆍ25, 성당복구, 사제서품 은경축…. 그중 6ㆍ25를 겪은 것이 큰 어려움이었다.
50년 6월 25일 동족상잔의 6ㆍ25전란이 터져 인민군이 왜관 일대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오자 왜관 읍민들은 읍민소개령을 받고 짐을 싸서 피난하기에 바빴다 낙동강 인도교가 폭파되자 많은 사람들이 맨몸으로 강물을 건넜다. 이때 아기를 업은 부인들은 깊은 물은 생각치도 않고 강을 건너다가 업은 아이가 물밑에서 숨진 것을 보고 대성통곡하는 등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나는 이때 김천에서 내려온 최재선 신부와 함께 왜관역 피난열차에 탑승하였다가 지천에서 떠나지 않고 지체하는 화차에서 내려 특별차를 교섭, 대구로 왔다. 대구에 도착한 후 비산동성당으로 가서 피난 첫 날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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