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신자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고통 받는 북한 교회들 위해 기도드리는 사이에 남침 준비를 마친 괴뢰군은 남침에 앞서 6월 24일 야음을 기하여 북한에 남아 있던 신부들을 모두 잡아들이고 남한 교회를 향해 총부리를 돌렸다. 6월 25일 일요일 새벽 38선을 넘어 파죽지세로 침입해 오던 괴뢰의 총부리가 교회를 향해 불을 뿜은 것은 6월 27일 강원도 소양성당에서였다. 애란인 콜리어 신부를 총살한 괴뢰군은 그 후 가는 곳마다 교회를 파괴하고 성직자 신자들 살해 또는 납치했는데 동란을 전후하여 남북한에서 살해되었거나 체포되어 옥사 또는 생사를 알 길 없는 신부 수녀 신학생 수는 1백 4명에 달했다. 교구별로 보면 덕원 함흥이 38 평양 18 서울 23 춘천 6 대전 10 광주 3 연길 4 기타 2명 동란을 전후해 체포된 성직자 수는 1백50명이었으나 그 중 46명은「죽음의 행진」을 거쳐 본국으로 송환되거나 또는 탈출해 살아날 수 있었다. 동란 중 성직자들이 당한 수난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죽음의 행진」이다. 서울 점령과 함께 체포된 외국인 성직자들이 50년 7월 19일부터 53년 4월 17일까지 33개월간 때로는 영하 30도의 추위 속에 주림과 질병과 온갖 모욕을 받아가며 서울→평양→만포→고산진→초산→중강진→만포→후창→평양을 있는 생사의 기로를 헤메인 이 수난은 후에 살아 남은 사람들에 의해「죽음의 행진」으로 이름 붙여져 극한 상황 속에서 신앙에 입각한 인간 의지의 강인함과 공산주의자들의 잔혹함을 알려 주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직자들을 살해하거나 납치해 갔다. 어떤 신부는 제의방에서 사살 당했는가 하면 남북의 눈보라길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고 어떤 신부는 미사를 마치고 나오다『왜 우리 신부를 잡아가느냐』울부짖는 신자들을 뒤로 다시는 돌아보지 못할 길로 끌려 갔다. 그러면서도 신부들은 신자를 생각했고 신자는 끌려 간 목자(牧者)를 찾기 위해 생사를 무릅쓴 모험을 아끼지 않았던 것.『내 양 (신자)들이 모두 무사히 피난가면 나도 떠나겠소』위험이 닥쳐오니 피신하시라고 권유하는 신자들에게 먼저 떠날 것을 권하며 자신은 눈 앞에 보이는 형극 앞에서도 태연할 수 있었던 목자를 대부분은 순교의 영예 속에 지금도 교회 안에 살아 있다. 이제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들을 모아 신앙에 살다 신앙을 위해 죽어간 이들을 되새겨 보자.『나는 어린이와 같이 무죄하니 내 집(덕원수도원)으로 돌아가게 해 다오』(덕원교구장 사우에르 辛 주교ㆍ50년 2월 7일 73세로 평양감옥에서 해소와 옥고로 사망)『내가 성직자의 영광을 받은 이후 처음으로 당신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하는 특전을 입었음은 나의 생애에 있어 가장 영광입니다』(교황사절 方(PㆍJBYRNE) 주교 50년 11월 25일 죽음의 행진 중 중강진에서 사망)『나는 떠나지 않겠소. 책임자인 내가 죽을 곳은 이곳(용산소신학교)뿐이요. 나는 박해를 각오하고 남겠소.』(용산소신학교 교장 이재현 신부 50년 9월 26일 남북 행방불명)『나를 죽이는 것이 원이라면 먼저 쏘아라. 너희가 내 육신을 죽일 수는 있어도 영혼을 빼앗아 갈 수 없을 것이다.』(서울 영등포본당 주임 이두종 신부ㆍ50년 7월 2일 성당 제의실에서 피살)『응 내가 물 떠다 주지. 내가 가서 구해 주지…내가 가지요. 응 내가 가요』(강원도 양양 주임 이광재 신부ㆍ50년 10월 9일 수용 중이던 원산와 우동형무소 뒷산 방공호에서 다른 298명과 함께 피살. 이 말은 자신도 총에 맞아 죽어가면서 옆에서 물을 청하며 죽어 가는 피살자의 신음을 듣고 되풀이한 말이다.)『양을 두고 목자가 먼저 떠날 수는 절대 없습니다. 모두 떠난 후 떠나겠습니다』(평양 기림리 주임 이민호신부ㆍ49년 12월 7일 성당에서 피체 행방불명)『형님은 공로 많이 세우셨지요. 가시거든 이 동생을 잊지 마시요. 나도 내일은 형님을 따라 가겠습니다.』(仁川 샬트르ㆍ성바오로 수녀회 지도 孔(JㆍCOMBERT) 신부ㆍ50년 11월 13일 죽음의 행진 중 중강진서 사망. 운명 하루 전 역시 신부인 친형 孔(AㆍCOMBERT) 신부 운명서 형에게 한 말)『주여 죽기 위해서는 얼마나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명동 주임 禹ㆍ(PㆍVILLEMOT) 신부ㆍ50년 11월 11일 죽음의 행진 중 중강진서 사망)『나 혼자 갈 터이니 돌아들 가시요. 다른 수녀들을 위해 돌아가시오.』(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원장 張 앙네다(貞溫) 수녀ㆍ평양분원서 추방 당한 후 평남 두안 근처 송림이에 피신 중 그곳 당 세포위원회가 보낸 수레에 실려가면서 따라오는 수녀들에게 당부한 말. 생사불명)『나는 최후까지 성당을 지킬 것이며 천주를 부인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 가톨릭 신앙으로써 천주를 증거할 각오가 되어 있다』(강원도 삼척 주임 陳(PTㆍMAGGINN) 신부ㆍ50년 7월 피살. 일자 미상)『당신은 후에라도 꼭 영세하며 천주의 아들이 되시오』(황해도 사리원 보좌ㆍ50년 10월 16일 피살. 고문하는 인민군 장교에게 한 말)『주여 당신만이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당신만이 우리의 도움이십니다』(평북 강계 주임 석원섭 신부ㆍ50년 7월 8일 신병으로 신음 중 사제관에서 피체 생사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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