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내적영광과 외적영광
1. 사도신경의 표현에 따르면 창조는 원칙적으로 아버지께 돌려진다. 신약에서 완전히 계시된 가르침에 따르면 그것은 성삼의 작품이다. 특히 바오로와 요한의 글에 비추어 우리는 세상창조의 모델을 아들에게서, 그리고 세상창조의 원천을 성령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과 본질이 같으신 이 「위격―사랑」이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무로부터의 세상창조의 원천이다. 즉 모든 존재에게 주는 존재선물의 원천이다. 이 무상의 선물에 다양하고 수많은 존재전체가 참여한다.
창조에 대한 신앙진리는 성서가「하느님의 영광」이라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계시해준다. 하느님의 영광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 안에 있다. 말하자면 세위격안에 한신성의 무한한 깊이와 한없는 완전성을 채우는 것은 그「내적」영광이다.
신성의 신비 자체에서 솟아나오는 하느님의 내적 영광은 창조사업을 통해 어떤 의미로 「바깥으로」옮겨진다. 세계창조와 더불어 말하자면 하느님 영광의 새로운 차원이 시작된다. 이것을 앞의 내적영광과 구별하기위해 하느님의 외적 영광이라 부른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 피조물의 대변자
2. 성서는 많은 구절과 여러 방법으로 하느님의 외적 영광에 대해 말한다. 시편18(19)편은『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얘기하고, 창공은 그 손수하신 일을 알려 주도다』(1~2)라고 부르짖는다. 집회서는『…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찼도다.』(42.16)라고 말하며 바룩서는『…별들은 자기들을 만들어주신 분을 위하여 즐거움으로 빛을 낸다』고(3.34)말한다.
다른 곳에서는 피조물들에게 창조주 하느님의 영광을 선포하라고 호소한다. 『주님께서 만드신 만물이여,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께 지극한 영광과 영원한 찬양을 드려라』(다니엘3, 57). 성서는 비슷한 표현으로 가득차있다. (시편65/66,1~4 103/104, 24민수기14, 21역대기상29, 12참조)
피조물 속에 새겨진 이 영광의 찬미가는 거기에 적절한 언어적 표현을 바칠 수 있는 존재를 기다린다.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을 찬미하고 그 업적의 위대함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존재를 기다린다. (집회서17, 8참조)볼 수 있는 세계 안에서 이런 존재는 인간이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 피조물들의 대변자이고 그들의 통역자이다.
정당한 자율성과 부당한 자율성
3.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현대세계 사목헌장」36항에 비춰볼 때 창조에 대한 진리는 신 ․ 구약 계시에 바탕을 둔 신앙진리일 뿐만 아니라 어떤 종교를 믿든 지간에 모든 믿는 이들에게 공통되는 진리이기도하다.
계시에 완전히 나타난 이 진리는 그 자체로 인간이성이 접근 할 수 있는 것이다. 공의회의 표현대로『창조주 없이 피조물이란 허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하느님을 잊어버린다면 피조물자체의 정체도 어두워지고』말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현은 창조된 세계가「궁극적 근거」를 요청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덧없는 우연적 세계는 창조주 없이 존재 할 수 없다.
이러한 창조진리와 관련하여 공의회는 지상사물의 「정당한」자율성과 「부당한」자율성을 구별한다.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사물들의 독립을 선언하고 인간이 창조주와의 아무런 관련도 없이 그것들을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한 자율성이다. 이것은 창조에 대한 진리를 거부하고 부인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입장이「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주장된다. 이런 식의 자율성은 부당할 뿐 아니라 쓸모도 없다.
참으로 창조된 사물들은 창조주의 뜻에 의하여 그들에게 고유한 자율성을 누린다. 그것은 창조의 목적에 속하여, 바로 그들의 본성 속에 뿌리박고 있다. 『만물은 창조되었다는 조건자체로써… 고유의 법칙과 질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이 말은 인간에게도 해당된다. 사실 인간은 우주의 법칙과 가치를 통일성 있게『발견하고 이용하고 정리하려는』정도만큼 창조된 사물의 정당한 자율성에 창조적으로 참여 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고유한 자율성을 올바로 성취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창조의 내 재적목적과 만나게 되며 간접적으로 창조주와 만나기도 한다.
자율성과 생태학의 관계
4. 『지상사물의 정당한 자율성』의 문제는 생태학, 즉 자연환경의 보호와 보존문제와 관련된다. 생태학적 파괴는 피조물들을 멋대로 이용하는 데에서 생긴다. 창조사업에서 내재된 목적을 무시하거나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피조물들의 법칙과 자연 질서가 깨트려지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지상사물의 자율성을 그릇 해석하는 데서 나온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정당한 자율성의 원리와 창조주에 대한 진리와 관련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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