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1월4일 대구에서 파발꾼 도착. 또 소송사건이다. 지난 12월 18일 저녁, 죠조 신부가 김산(金山)군 김천(金泉)의 장터를 지나다가 군중들로부터 기습당해 수염이 뽑히고 다리가 반쯤 부러지고, 눈에 피멍이 드는 등…그의 복사도 머리카락이 뽑히는 등, 한 시간 가까이 5백 명의 군중이 그들을 모래밭에 파묻고 짓밟았다고 한다. 그들이 무사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고.
1월 13일 힐리어씨가 선교사들 및 교우들에 대한 예전의 박해령을 폐지하게 하려는 프랑댕씨의 계획에 관해서 내게 얘기하다. 그는 그러한 요구가 현재로서는 너무 급한 것 같아 위험해 보인단다. 그의 말인 즉 그것은 효력을 상실한 옛날 법률에 대해 조선정부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일이며, 조선 포교지의 상황을 개선 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악화시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1월 14일 영하16도. 힐리어 씨를 방문. 어제 제기된 문제에 관해 한 시간정도 대화를 나누다. 결국 우리는 의문이 제기된 상태에서 머물고 말았다. 프랑댕씨의 시도가 과연 시기적절할까? 힐리어 씨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의심 많은 조선정부가 오히려 현재 선교사들에게 허용하고 있는 사실상의 자유마저도 빼앗아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든다고 한다. 충분히 명백하고도 유효한 서류를 손에 넣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오히려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한다. 긍정적인 쪽으로 되자면, 외교사절단 전체의 협조는 물론 전체 유럽거류민 협조도 얻어야 될 것이다. 이러한 협조란 아마도 꿈에 불과하겠지!
1월 16일 죠조 신부 사건에 있어서는 공범자3명이 유배를 당할 것이며 김천(金泉)장터에 한불조약의 보호조항을 방(榜)으로 써 붙일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아직도 더욱 혹독한 고통이 앞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1월 23일 오늘은 여러 곳에서 성당을 위한 성금이 들어오다. 그중에는 꽤 큰 금액(5백냥)도 있으며 보잘것없는 과부의 헌금도 있다. 값진 것이기는 마찬가지이지!
2월 8일 청국 우편선 도착 「파리」「홍콩」「상하이」로부터 연말 보고서. 포교성성(현(現) 인류복음성)장관 추기경이 편지로 작년 7월에 아내를 잃어버린 이의 사건에 관한 정보를 문의해왔다. 그러니 그 어리석은 프랑댕이 제멋대로 사면에서 나를 중상모략하기위해 로마대사에게로 편지를 띄운 모양이다. 딱하기도 해라!
2월 14일 용산에 가서 신학과 학생들의 구술시험, 학생들은 매우 만족스럽다.
2월 20일 정도수의 친구 중의 한 사람인 유가 그의 친구 김참봉 과 또 다른 사람 하나를 데리고 오다. 그들이 진정으로 천주교의 교리를 알고자 하는 것 같기에 그들에게 「천주실의(天主實義)」「진도자증(眞道自證)」「만물진원(萬物眞原)」을 주었다. 그들은 내 앞에서 그 책들의 서문을 거침없이 읽어 내린다.
3월 2일 영하5도. 저녁때 르메르 신부와 함께 프랑댕 씨를 찾아가서 원산의 신부들이 알려온 사건들을 미리 전해주다. 또한 2월 18일까지도 로베르 신부는 대구에서 어떠한 재판이 있었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고 말해주다. 그러자 공사는 우리에게 버럭 성을 내며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바로 죠조 신부의 실수라고 한다. 신부가 장터에 멈춰서 말에서 내린 것이 더 할 나위 없이 경솔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편지자체로 미루어보아도 그렇지 않더냐. 그는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당연히 내게 말해야 할 줄로 알고 있더라. 수염 좀 뽑힌 일이 이제 뭐 그리 대수냐』라고 말한다. 나는 그저 머리를 숙이는 것으로 족할 수밖에. 너무나 파렴치하여 어느 편에서 이해를 해주는 것인지 모를 정도다. 우리가 곧 그 자리를 물러나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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