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이 일어났다
인류에게 하느님을 전해주려 오신 분이 왜 고난을 당해야 했을까? 구원의 역사 안에서 예수의 처형이 무슨 뜻이 있는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바오로는 고린토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해 가르쳤다. 사랑은 자기 이익을 찾지 않고, 사랑은 잘못을 참아주고, 앙심을 품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서 해주신 업적을 알고 있다. 「우리를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이 모든 것이 일어난 것이다. 즉 창조와 구원, 그리고 세계의 완성을!
그분은「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혔다」라는 우리의 믿음에 눈을 돌려보자.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그토록 사랑했다.
구약 창세기 22장에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 광경은 나중 예수수난을 예언하는 것 같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극진히 사랑했기에 앞으로 야훼 하느님의 약속을 실현하게 될 자기의 단 하나뿐인 아들까지도 양보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신앙적 순종으로 이사악을하느님께 바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결국에는 그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 이야기 안에는 아브라함이 오직 하느님 한분에게만 바치는 신뢰 가득한 순종이라는 표본적 태도가 돋보인다. 동시에 이 이야기에는 당시 이스라엘 주변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을 명백히 거부하는 뜻도 표현되고 있다.
이 구약은 그리스도를 향해 아직 문을 열어놓은 상태이며, 예수로부터 비로소 모든 것이 명백해질 그런 것이다. 골고타는 마리아 땅을, 성부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그리스도는 이사악을 능가하고 있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최후의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분은「우리를 위해서는」최후의 것을 내주었다.
하느님은 자기 아들을 아까워하지 않고「우리 모두를 위해」내어주었다(로마8, 32). 더욱이 그 아들은 자유로운 마음으로 아버지의 뜻에 맞추어 자신을 바쳤고「우리를 위해」희생되고자 했다.
그렇게 참혹한 결말이 되어야 했는가?
이사악은 그리스도요, 아브라함은 하느님 아버지라는 이 대비에는 의문이 생기게 한다. 물론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물음이지만! 「하느님의 아들이, 그렇게 창피하게 죽어야하고 또 그런 끝장을 봐야했는가?」이 물음 때문에 교부들과 성인들도 많이 고심했다. 우리도 십자가라는 이 기분나쁜 일(I고린토 1, 18~31)과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는(루가9, 23~25)문제를 결코 피해 돌아갈 수는 없는 문제이다.
과연 하느님은 피를 좋아했는가? 이런 오해를 가져서도 안 될 것이다. 하느님은 한분뿐이시고 아브라함의 하느님,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이 십자가 사건은 이세상의 가장 못난 밑바닥이며 동시에 하느님 사랑의 최고봉이다.
모든 인간적인 이해를초월하는 하느님의 지혜인이 십자가의 어리석음에 머리를 숙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길을 같이 걸어가는 사람만이 이 진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며 십자가의 영광을 마음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 자기의 가시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나 자기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그를 통해 구원되기 위해서는 확고한 신앙과 깊은 겸손이 필요할 것이다.
누구든지 한번 신뢰하기로 작정할 때 주님은 그를 붙잡아주고 자기한테로 끌어안을 것이다. 「반드시 그토록 참혹하게 죽어야 했는가?」라는 괴로운 물음에 대해서 예수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의 대화가운데 다음과 같이 되물음으로 대답하고 있다. 『당신들은 어리석기도 합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그 모든 것을 믿기가 그다지도 어렵단 말입니까? 그리스도가 이 모든 고난을 겪어야 그의 영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루가24, 25~26).
예수는 제자들과 우리에게 주님의 수난이 구약과 일치함을, 구약의 약속들을 너무나 충분히 이행하고 그 완전한 뜻을 드러내었음을 보여주었다.
사랑은 자기의 이익을 찾지않는다
하느님의 사랑은 자기의 이익을 찾지 않으며 잘못을 참아주고 앙심을 품지 않는다. 하느님은 부활과 승천, 성신강림으로 완성될 이 십자가 사건에서 자기의 창조사업을 완성시킨다. 이 창조의 왕관이며 꽃은 바로 사람이었다. 하느님은 원죄로 인해 이 좋은 창조 안에 들어오게 된 잘못을 마음속에 오래도록 품고 있지 않는다. 그 대신 하느님의 어린양인 그리스도로 하여금 이 세상의 잘못을 없애주고 모든 창조물에 유익하도록 새로운 생명을 낳게 해주었다. 우리는 교회의 7성사를 통해서 이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 교회의 성사는 십자가의 생명의 나무로부터 나오는 열매인 것이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렸다」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계신 분」이라는 것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내어 이 신앙의 진리를 바라보자. 우리는 이 진리 안에 쉬고 사랑하고 원하고 행동하며 우리자신을 봉헌하자. 바오로의 말씀처럼『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읍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나를 위해서」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디아 2, 20)하고 고백하자.
<빅토르 도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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