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동안 어느 주교관 관리인으로 종사하다 죽은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29세 때 물도 긷고 청소도 하는 잡부로 들어와 천직인 양 순종 잘 하고 자기 몸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하다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일제가 교회를 못 살게 들볶을 때도, 6ㆍ25 동란이 터져 모두들 제 살 길을 찾아 뿔뿔이 떠날 때도 노인은 주교관을 한 발자욱도 떠나본 일이 없었다.
노인은『곧 돌아오게 될 터이니 자네는 이곳을 지키게』한 책임자의 말에 따라 남아 있다가 주교관이 괴뢰군에 점령 당하면서 거리로 쫓겨났다.
그래도 노인은 매일 아침 출근하듯 주교관 대문 밖을 서성이며 난장판이 된 건물과 마당을 치우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얼마 후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성직자들이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듣곤 마치 자신이 갇혀 있기나 한 듯 괴로움에 눈물을 흘렸고 그들에게 몰래 먹을 것을 전해 주기도했다.
혼란 중에도 교회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이곳저곳 뛰어다니다 오해를 받고 경찰에 끌려가 매를 맞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신부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어머님 말씀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주교관 뜰에서 생을 보낸 노인도 마침내 나이가 들고 몸이 불편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정든 직장을 떠나야 했다. 퇴직을 한 것이다.
그 후 병석에 누워 지내는 동안 노인은 주교관에서 매월 5천 원씩 보내 주는 생활비를 받는 것을 몹시 부끄러워했다.『무슨 큰 일을 해다고 퇴직한 노인에게 생활비를 줍니까. 주교관 살림도 어려울 텐데』
노인에게 있어 사회에서 흔히 쓰이는 연금 따위의 용어는 관심 밖의 일이었고 오직 주교관 사람이 걱정이었다. 노인은 한마디 불평없이 몇 년을 병석에서 지내다 주교관에서 보낸 삶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눈을 감았다. 장례가 끝나고 며칠 후 주교관 책임신부는 노인의 아들에게 약간의 돈이 든 봉투를 주며 이렇게 말했다.
『적은 돈이네만 자네 부친의 퇴직금으로 받아 주게』아들은 집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했다.
아버지는 퇴직 후 몇 년간 매월 생활비로 5천 원씩 받아왔다. 어떤 기준에서 5천 원을 지급했는지는 모르나 이는 연금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다시 퇴직금조로 얼마 준다는 것은 사회 통례에 어긋나는 것이다.
5천 원이 연금이었다면 퇴직금은 되돌려야 하고 연금이 아니고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동정해 얼마씩 도와준 것이라면 36년 근무의 퇴직금이 아무리 적어도 일금 10만 원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 아들은 다음날 책임신부를 찾아가 해명을 청하자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지 말게 어떤 규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5천 원씩 보내준 건 오래 있은 정리에서 약값에나 보태 쓰라는 것이었고 10만 원도 굳이 퇴직금이라기보다 상도 당하고 해서 어려울 것 같아 애도의 표시로 준 걸세』
결국 이 일은 10만 원 지급의 근거를 요구하는 노인의 아들과 관례를 주장하는 신부 사이에 말다툼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는데 훗날 노인의 아들은『차라리 퇴직금 명목을 붙이지 않았던들 아버님 생애에 긍지나 지녔을 것을 36년간 근무의 마지막 대가가 10만 원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분노가 앞선다』고 술회했다.
아마도 노인은 자신의 고귀한 삶의 흠이 된 이러한 말썽을 원치 않았을지 모르나 이 한 토막의 사례(事例)는 오늘날 소위「교회기관 종사자」들에 대한 교회의 무책임한 인사 및 처우와 관련해 볼 때 시간을 초월한 문제점들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노인을 고용한 주교관은 노인의 퇴직이나 순직을 대비한 어떤 규정이 없이 일을 시켰고 또 노인은 교회에 그런 것을 요구할 줄도 몰랐다.
노인은 일만 하면 됐지 채용을 하고 해임하는 인사 규정 따위는 필요없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주교관 주인이 갈려『자네 그만두게』했더라면『내 잘못』을 먼저 생각하면서 성직자의 명령에 복종했을지 모른다.
이러한 사고에 뿌리 박은 전근대적 인사 행정은 지금도 우리 교회 안에 살아 있다.
본당 신부가 바뀌면 유급 사무장이나 전교사는 눈치 보기에 바쁘고 『그만두게』한마디에 책상을 정리해야 한다. 현재 일하는 본당 고용인 해고를 전임신부가 책임지도록 본당 인계시 조건으로 제시하는 후임 신부가 있는가 하면 「건축 재정」을 또는「경비가 덜 드는 수녀를 데려오기 위해」한 가장(家長)을 하루 아침에 해고하는 사례는 오늘에도 있다. 노인이 일하던 시대의 교회는 규모가 작아 굳이 인사 규정 같은 것을 만들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지 모른다. 허나 지금은 본당도 그리고 산하기관도 많아져 그곳을 일터로 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한 적어도 한 교구(敎區) 안의 각종 근무자들을 위한 교구 인사 규정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복지를 위한 투자는 그만두고라도 가톨릭의 무슨 기관에 종사함이 박봉의 대표자인 양 머리를 떨구고 다니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책임이 교회에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능력이 그 정도인데 박봉을 탓할 것 없다』고. 그러나 능력은 자신의 일에 대한 긍지와 애착 그리고 부단한 자극을 통해 향상될 수 있다고 본다면 지금의 전근대적 인사 행정이 개선되지 않는 한 교회의 발전은 분발을 통한 교회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밖에 안 된다. 한국 교회 역사를 관류(貫流)해 오면서「봉사」와「희생」으로 명분을 찾는 버려야 할 이 전통은 목전에 많은 일을 두고 있는 교회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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