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존이 코 끝으로 와 닿자 듬뿍 들이쉰 공기는 내 폐를 가득 채우고도 남아서 나의 몸을 풍선으로 만들어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음악부장이 정해 준 백m 지점까지 갔으며 그래도 풍선은 팽팽한 채로 있어서 백m씩 세 곱 네 곱을 더 수영한다고 해도 나는 풍선이니까 얼마든지 가볍게 떠 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꽤 상쾌한 기분으로 밤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그리고 풍선은 조금씩 조금씩 힘을 잃고 물을 맴돌았다. 그러나 바다는 비길 데 없이 포근했다. 넵류운(海神)이 자비의 신인 것만은 분명했다.
모든 걸 품에 안아서 한결같이 자녀로 여겨 주는 관용과 자비가 곁들인 이 바람을 잃고 있어야 할 곳은 무진장한 허공이나 아니면 본래의 모습대로 약간의 화학적 작용을 거쳐 공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행하게도 바다 위에 띄워진 풍선은 푹신한 담요에 파묻혀 쌔근대며 자는 어린 아가처럼 안심하고 휴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기분 좋게 흔들리는 요람에서와 같이. 자비의 신에게 내 전부를 맡긴다는 건 확실히 영리한 생각이었다. 호흡하기가 곤란해짐에 따라 나는 점점 바다의 태도에 매혹되고 있었으며 아베 마리아에 대한 애착은 사실 그 안온함 중에서도 큰 부담이 되었었다. 그리고는 모르겠다.『어때? 태평양을 가로지른 기분이』대대장 생도가 잘 생긴 얼굴 가득히 웃음을 채우고 내 눈을 들여다봤다. 그는 내 고등학교 선배였다. 너무 잘 생긴 단아한 용모와 패기 넘치는 전형적인 사관생도의 타입은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도 남았다. 그러나 그는 항상 고요했으며 암탉이 병아리를 품 듯 포근한 정을 후배에게 내쏘았다. 나는 힉 하고 웃어 버렸다. 그렇다. 재미없는 일이 아닌가! 내가 태평양 한가운데서-옥포만도 분명한 태평양의 일부니까-이 격리실까지 상륙하기 위하여 감미로움이라든지 상쾌할 항해를 모두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건 뻔한 일이었다. 구명대에 동여메어서 나를 안아 주던 바다를 밀어제치고 노를 저었다고 생각하면 속이 메시꺼워졌다. 하 어이없게도 나는 다시 한번 사관생도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짓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예 맘 먹은 대로 태평양을 고기 등에 타서라도 가로지르고 말 걸….『바보 친구야. 너에겐 직경 일 밀리미터짜리 부레래도 달려 있지 않는다는 걸 잊었니?』『흥 부레 까짓것 내 전부가 풍선이 있습니다』나도 다부지게 응수했다. 다시 바보로 보여지는 게 나는 지겹게도 싫었다. 내가 바보가 아니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나는 직접 증명하고 싶었다. 항해술에 필요한 응용수학이라든지 계산척의 눈금 읽기라든지 내 물리 실력-이 학년 생도 중에서 최고 점수를 기록한-을 과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그런 것에 관계없이 너는 사실 머저리다. 그런 질문을 해서 기압 받는 게 뭐야?』그런 질문? 아? 아직까지 내가 그 목소리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소릴 질렀다. - 걸 잊어버리다니?-라고.『그런 정신을 가지고 장군이 되긴 다 글렀네. 자네』『형 제 고민을 조금이라도 알고 하시는 말씀이세요?』『아, 아다마다. 네 사춘기 시절 가슴을 꼼지락거리게 해준 가시내 때문에 어떻게 된 거겠지』『천만에 지금 가슴은 미칠 듯이 뛰고 있다구요. 그 목소리…』『야. 너, 지금도 정신 차리지 못했구나. 대대장으로서 명령한다. 일체 잊어버리도록!』대대장 생도는 차려 자세로 명령을 하고는 직각으로 허리를 굽혀 시트를 턱 밑까지 바싹 끌어서 내 가슴을 세차게 누른 다음 도어 쪽으로 몸을 휙 돌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되돌아서서 미소를 보이며 부드럽게 말했다.『진우야, 정신 차려야 해. 너 가수 될 뻔한 사건 때문에 음악부장이 근중이야』나는 정신적으로 몹시 약해 있었다. 메랑콜리한 상태가 내 전부를 어떻게 요리하는지 도무지 헤어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으스스한 북풍이 몰려오는 십일 월에까지 휭뎅그렁하게 빈 가슴을 쥐어짜며 연말고사를 취뤘다.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언제 어디서든지 아베 마리아는 내 귓가에 과즙처럼 달콤하게 출렁였고 달콤한 목소리는 나로 하여금 그 속으로 그저 아늑히 잠겨들게 했다. 어느 정도 자포자기 같은 그러면서도 심한 환상 방황에 걸려서 내 추억 속을 아무리 맴돌아도 정작 내가 당해야 할 정상은 눈 앞에 요원할 뿐 좀체로 내 미아(迷兒)적인 상태는 회복될 줄을 몰랐다. 원양 실습을 떠났던 사학년 생도들이 의기양양하게 옥포만에 닻을 내리고 팡파르가 울려퍼졌다. 모두들 좋아서 난린데 왜 나는 그렇게 헐렁한 꼴이었을까? 당장에 대대장 생도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내 어깨를 흔들며 소리질렀다『생도, 아직도 꿈 속의 왕자님이신가?』『잘 다녀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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