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에 누가 내게 가엾다고 하면 곧잘 그렇게 눈물을 머금었었다.
새로 나의 어머니가 되신 그분을 친척들은 좋은 분이라고들 했지만 내게는 몹시 싸늘하고 매서운 분이셨다.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저녁때라든지 별이 제 자리를 찾아 반짝일 즈음 내가 집 앞 길가 모퉁이에 서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은 나를 가엾다고 했다. 그럴 적마다 내 눈은 젖어들고 동공은 크게 열렸었다. 그러면 옆집 호물대기 할멈은 내 코를 닦아 주며 말하곤 했었다.
『얘 아가야 잊어 버려야 될 건 일찍 잊어 버리는 게 좋아요』
그때 열 살이 못 되었던 꼬마는 학교 가는 길에 길게 뻗은 개천에서 잠자리를 잡느라고 거의 한나절을 보내는 게 일쑤였다.
내게 있어 엄마보다 더 좋은 건 없었으니까 엄마가 없다고 해서 내가 뛰놀고 까불고 하지 않는다면 엄마에게 무척이나 미안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항상 진우 곁에 있어요. 착한 애는 엄마가 앓더라도 명랑하는 거야 자 나가서 뛰어놀아야지』리고 엄마는 내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었다.
그러나 나는 내 엄마가 흙 속에 묻히는 걸 봐 버렸다.
그리고 꽁꽁 발로 다져서 흙 속 깊이 깊이 나의 엄마를 묻어 버리는 상여꾼들은 지금도 내게 짙은 인상들로 남게 되었다.
대대장 생도가 나를 일깨웠을 때의 내 기분은 바로 그렇게 엄마를 잃던 열 살 적 그대로였던 게 아니었을까? 가엾다고 말만 해도 입을 비쭉거리던 그때 말이다. 방학이 이십사시간 후에 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대대장의 방을 찾아갔었다.
자랑스러운 그와 동해하면 나는 정말 내 자신이 놀랄 정도로 의젓한 사관생도가 된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준비는 다 됐나?』
그는 이제 겨울방학이 끝나면 생도생활을 마쳐야 했다. 그래서 아마 책이랑 여러 가지 소지품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 트렁크에 책을 넣기 시작했다.
입을 다물고 서시히 손을 움직이며 나는 또 다시 노랫소리를 즐겼다. 묘한 일이였다. 정말 새삼스럽게도-. 사관생도의 책이 모두 크기와 부피가 거의 일정한 것처럼 노랫소리 역시 변함없다는 것이-.
내가 그 조화를 깨뜨리겠다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갑자기 부딪친 큰 사건처럼 맹수의 불빛을 느낀 어리고 가련한 들짐승처럼 그 정연한 두 개의 조화 앞에서 나는 거의 무색해졌다.
책을 거의 정리하고 났을 때 온 방안은 잔뜩 휴지로 덮였었다.
나는 나대로 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는 동안 책갈피에 끼워 넣었던 여러 종류의 종이 조각 무슨 메모 나부랭이들이, 대대장 쪽은 더 굉장했었다.
하찮게 눈이 머문 것 무엇이라고 그때의 내 환희를 표현할까?
내가 그토록 헤어나가기 위해 안달하던 환상 방황에서 이끌어 준 보통우편엽서에게 말이다.
거짓말처럼 쓰여진 이름은 분명히「민찬」이었다.
이 이름에서 나의 아베 마리아는 제 빛을 찾아서 더욱 은밀한 노래가 되고 내 온몸은 그 소리에 젖은 헤브레아의 어린 천사처럼 나부껴졌다.
『형, 이것…』
내 손은 떨렸으며 그래서 누구의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을 때 다행하게도 목소리가 내게 힘을 주었고 내 뻗은 팔을 내려놓지 않을 수 있었다.
『네가 왜 갑자기 그렇게 환해졌지?』
그는 조금 빈정되며 그러나 나를 어떻게 더 참아 줄 수 있느냐는 인내 없는 목소리로 한숨까지 내뿜었다. 나를 진짜 바보라고 생각한다는 역겨운 표정이 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빙긋이 계속해서 웃었다. 가벼운 비웃음이 순간이었지만 그의 눈 언저리를 스쳤을 때 나는 입을 열었다.
『민차니 말예요. 혹시 J여고생 아네요?』
『그래 맞아 내 조카야』
『어쩐지…』
나는 무릎을 쳤다.
우습게도 나는 대대장의 성이 민씨라는 데에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그…아베 마리아를 부르는 목소리를 기어이 찾았어요』
『진우, 지금까지 계속되니…지지리도 긴 꿈이군』
대대장은 내 환희를 나누어 가질 자격이 없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적어도 그 순간의 굉장한 환희는 완전한 내 몫이었다.
왜냐하면 대대장은 계속해서 나를 좀 바보스럽고 한심한 친구로 여겼으니까 나는 입을 다물고 침묵을 눈동자까지 지키도록 자신에게 타일렀다.
대대장은 계속 야릇한 눈으로 나를 보며다시 뭔가 지껄이지 않나 하고 기대했지만 내가 갑자기 인색하게 그를 대한 것은 그럴 법한 일이었다.
아직도 꿈을 꾼다고 천만에. 나는 눈에 휩싸인 산을 환상 방황에서 벗어나서 정상까지 정복하고 드디어 그곳에서 하늘을 노래하는 요정을 만났는데…. 손을 붙잡고 경쾌한 스텝을 밟으며 온통 기쁨에 젖어 버렸는데…꿈이라니? 버스에서 어느 겨울에 만났던 차니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데 내가 왜 그렇게 힘들여야 했었는지 아무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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