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은 전례상 대림절이요. 오늘은 이 대성당과 한국교회의 주보이신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의 대축일입니다. 우리나라의 해방이 1945년 8월 15일 성모마리아의 승천대축일에 얻어졌고 또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합법(唯一合法)정부로 국제연맹으로부터 승인받은것이 1948년 12월8일 바로 오늘 이 대축일이었다는것을 생각할 때 이것이 단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이상스럽고 성모님 축일은 참으로 우리겨레를 위하여 은혜의 날이라고 아니할수 없읍니다.
바로 이같이 뜻깊은 축일에. 또 우리에 대한 하느님 사랑을 잘 드러내는 뜻깊은 대림절에 우리는 우리나라의 모든이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존엄성에 합당한 인권의 존중을 받을수 있도록 기도하기위해 여기 모였읍니다.
오늘 미사의 뜻은 『하느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를 당신 모습대로 창조하신 그 존엄한 인간으로 회복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 모두가 당신의 자녀되고, 따라서 서로는 형제됨을 깨닫고.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시듯이 우리 서로 사랑하는 아름답고 인간다운 사회와 나라를 만들게 하여 주소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대림절의 뜻을 보나 오늘 성모님의 축일의 뜻을 보나, 하느님이 우리를 창조하실때에는 결코 멸망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느님과 같이 영원히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때문에 하느님은 오늘 읽은 제1독서 창세기에서 보듯이 아담이 당신의뜻을 거스려 죽음을 자초한 중죄를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날에 장차 한 여인이 인간을 이 죄와 죽음에서 구해 줄 구세주를 낳을것을 약속하셨읍니다. 그리고 때가 찼을때 오늘 복음에서 들은바와 같이 은총을 가득히입으신 마리아의 몸에 그 구세주가 잉태되게 하셨읍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그 모습은 바로 하느님으로 가득한 모습이요. 그것은 또 하느님이 모든 인간에 대하여 지니신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오늘 제2독서 에페소서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하늘의 온갖 영적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읍니다』라고 하셨읍니다. 또 이어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수 있게 하셨읍니다.』하고 말하면서, 그러니 이런 하느님을 어찌 찬미하지 않겠느냐고 까지 하셨읍니다.
사실 하느님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시고 이런 은혜로써 우리를 구원하기위하여 당신의 외아들까지 주셨읍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에서는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하여 주셨다』(요한 3,16)고 말씀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그 외아들이신 그리스도는 본시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을 한없이 낮추시고 남김없이 비우시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을 뿐 아니라. 우리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읍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죽기까지하신 하느님, 이것이 우리가 믿는 하느님입니다. 이 사실을 전하는것이 곧 복음입니다. 사실 복음, 또는 성경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이 한없는 사랑과 자비를 말하고 거듭거듭 전하는 것입니다.
1, 하느님은 인간을 이렇게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그 인간이 오늘날 현실에서는 어떤 처우를 받고 있읍니다까? 우리가 인권주일을 정하고 인권을 위하여 이런 기도회를 가지는데서도 잘 드러나듯이 하느님께서도 이렇듯 아끼시는 존엄한 인간의 인권이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도 쉽게 유린되고 또 무시되고 있읍니다. 날이갈수록 개선되기는커녕 질(質)과 양(量)의 면에서 다같이 날로 악화되고 있읍니다. 차마 말하기조차 두려운 고문. 성고문사건이 민중의 지팡이라고 하는 경찰에 의하여 버젓이 경찰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가하면 한꺼번에 몇십, 몇백 또는 1천여명이 구속되는 사태가지 나타나기에 이르렀읍니다. 신문보도만 보아도 연금, 연행, 압수, 수색, 구류, 체포, 구속, 수배등 반인권적인일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는 이런불안한 상황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읍니다.
정확한 숫자를 알수는 없지만, 2천여명이 넘는 정치범이 감옥에 갇혀있고, 수백명이 수배자로서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권상황의 밑바닥에는 정치문제가 깔려 있읍니다. 한 사회의 공동선은 그 사회를 이룩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간존엄성과 인권이 공권력에 의해 존중되고 수호되는 데서 비로소 당성되는 것입니다.
그 공동선, 즉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그 가치, 그 선이 거꾸로 공권력에 의해 유린되고 있읍니다.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읍니다.
2, 인도의 네루는 정치는 국민의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읍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정치가 국민의 눈물을 거두기는커녕 오히려 국민의 피와 눈물을 짜내서 흘리게 하고 있읍니다.
최루탄 때문에 눈물을 쏟아야 하는것뿐만 아니라, 정치범과 수배자와 그 가족, 그리고 상계동을 비롯한 여러지역의 도시철거민등. 가진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현실적으로, 또 제도적으로 강요하고 있읍니다. 우리 사회에 이렇게 강요된 눈물과 피와 원한 (怨恨)이 국민내부에서 광범위하게 끝간데없이 쌓여가게 된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것은 그만큼 더 여려웁게 될것입니다. 이 점을 우리는 참으로 염려하지 않을수 없읍니다.
따라서 정치범과 그 가족의 눈에,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의 눈에, 집도 절도 없이 철거를 강요당하는 도시 빈민의 눈에, 피눈물이 고이지 않게 하고, 그들 가슴에 한이 쌓이지않게 해주기를 우리는 진정 기도하는 심정으로 정부당국에 호소해 마지않는 것입니다. 국민을 상대로 작전을 벌이고, 고문을 통해 용공좌경의 허위자백을 받아내고, 최루탄을 무차별로 난사, 살상을 일삼는다면 그 눈물과 한이 어디로 가겠읍니까.
3, 최근 나름대로 민주화와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고 주장하는 단체들이 강제로 해산되고 있읍니다. 우리는 정부나 경찰의 해산명령이 명백한 법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 것으로 듣고 있읍니다. 권력의 행사는 자연법과 인간본성에 일치되는 「도덕적 힘」일때만 정당한 것입니다. 공권력의 행사가 법에 근거되지 아니한 상태는 사실상 비상사태라하지 않을수 없읍니다. 사회안에서 사람들은 인권과 화해,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단체를 만들고 정치적 반대의사 표시의 자유뿐 아니라 정보및 언론에 자유롭게 접촉할 자연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읍니다. (인권과 화해11참조). 노동자. 농민의 기본권이 보장되고 민주시민사회의 규범이 억압당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단체들이 존재하고 활동해야 할 이유는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자발적으로 형성될 이런 단체를 강제로 해산할 것이 아니라 정부 스스로가 공동선과 인권과 화해를 말로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단체들이 스스로 자진 해산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단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할일이 없어서 연행과 체포와 구속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단체를 만들고 거기서 활동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또한 강제해산한다고 해산되는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요인이 있는 한. 또다시 만들어지거나 지하화(地下化)하거나 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사회적 불안을 배태시킬 뿐인 것입니다.
4, 우리는 흔히 개헌정국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국민이 개헌을 바라는것은 조문 몇개를 바꾸자거나 나아가서 통치구조 그 자체만을 바꾸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인간이 더불어 함께 이웃과 사랑하며 인간답게 살 수 잇는 사회, 가난한자가 학대받지 않고, 약한자가 짓밟히지않는 세상, 억압이 없고 저버림이 없고 모든 인간이 한형제로서 사랑으로 감싸이고, 모든 사람이 남김없이 그 인간적인 존엄을 존중받는 그런 질서의 사회, 곧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사회를 목마르게 소망하기 때문에 민주화를 향한 개헌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로는 이나라 정치인들은 개헌의 참 목적이라 할 국민의 기본적 자유와 인권의 보장과 민주화에 대한 관심보다는 오직 어느 제도가 정권을 유지 또는 장악하기에 유리하냐는 계산에 치우쳐 통치구조 문제에만 매달리고 있는듯한 인상을 주고 있읍니다. 그러다가 오늘날은 힘과 힘의 극한 대립으로 맞서고 있읍니다.
5, 그러나 분명히 말할수 있는것은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있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계속 정치범으로 끌려가는 상황속에서 정략적으로 논의되거나 이루어지는 개헌은 적어도 국민에게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사회의진정한 민주화와 인권보장에의 요구가 무시된채, 그 강요된 침묵속에서 또는 국민을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집권연장의 정치모적으로 동원하여 우민화(愚民化)하는 과정속에 이루어지는 형식적인 개헌은 국민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또다시 정통성 시비를 유발하게 될 것입니다. 국민내부의 참다운 화해없이 갇힌 사람, 쫓기는 사람과 그 가족들의 인권문제가 해결됨이 없이, 새로이 나라를 다같이 세워보자고 하는 자발적인 합의와 화해없이처리되는 개헌은 참다운 민주화개헌이 아닙니다. 이땅의 모든 인간의 인권의 신장과 민주화를 위해서 개헌이 필요한 것이지. 개헌 그자체가 목적은 아닌 것입니다. 때문에 국민의 참여와 화해속에 이루어지는 개헌이 우리가 원하는 개헌입니다.
민주화에대한 국민의 열망을 허심탄회하게 수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정치인들이 개인적인 야심을 포기해야 된다는것이 우리의 바램이요. 생각입니다. 참으로 모든 욕망을 떠나고 사심을 없이하고 빈마음이 되어야 인권뭄문를 포함하여 오늘에 얽힌 모든 정치문제의 해결의 길이 보일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국민의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깨닫고 참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하고, 국민을 위한 민주적인 개헌을 할수 있을것입니다. 그때문에 우리는 현집권층과 정부여당은 물론이요 야당까지도 먼저 마음을 비우십시오. 사리사욕, 당리당략을 떠나십시오라고 호소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정국은 풀리지않고 나라의 장래는너무나 어둡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나라를 위해서 있지 결코 이 나라가 여러분을 위해 있지 않다는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6, 친애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진정한 민주화와 화해의 새날로 가기위해서 우리는 우리각자가 서로에게 형제가 되고 형제로 보이고 비쳐져야 합니다. 우리 이웃이 바로내형제로 보일때 비로소 새날은 오는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용공좌경 문제와 관련하여 국민내부의 불신과 분열의 혼란한 가운데에 빠져있읍니다.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은 정부를 격렬하게 그 성격을 규정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반대자를 전부는 아닐지라도 용공좌경으로 몰아 이 국민, 이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일찌기 1970년대중반의 긴급조치 시대와 1980년대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용공좌경의 회오리에 휘말린 적이 있었읍니다.
이 나라와 민족이 처한 상황에 비추어 민족의 자존과 자율에의 주장이나 시민적자유와 사회정의에의 요구는 그때의 상황과 그기준을 어디에 설정하느냐에 따라 오해되기 쉬운 측면이 있어왔읍니다.
그러나 민족자존과 민주화, 그리고 사회정의에의 요구가 단지 그것 자체만으로 오해되거나 처단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와 같은 분단상황아래서는 한사람이라도 국민의 대열로부터 내치기 보다는 같은 형제로 끌어안아야 합니다. 서로가 먼저 남의 눈에 형제로 보이기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미움을 유발하고 선도하는 일은 가급적 자제되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이 적용되어 처벌을 받게 되는데서 오는 상처와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당한 사람과 그 가족은 너무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대 긴급조치시대, 어린 학생이 어떠한 형벌도 좋으니 제발 용공좌경으로 만은 몰지 말아 달라고 하소연하는 일이 너무 쉽게 이루어지거나, 또는 정치적으로 그것이 이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만일, 이나라안에 용공좌경된자, 더 나아가 자생공산주의자(自生共産主義者)가 정부 어느기관이 말한대로 만여명씩이나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현정부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른바 반공을 국시(國是)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참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 정의로운 정치를 하고 참된민주주의 정치를 하였는데도 이런 자생공산주의자가 생겨났다고는 도저히 볼수없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쉽게 사람을 용공좌경으로 몰지 말기를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용공좌경의 주장이나 또는 그렇게 오해될 일은 자신과 가정. 그리고 이 사회의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므로 각벽히 주의하여 근신하여 줄것을 학생등 관련 당사자들에게 호소하는 바입니다.
7,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 위원회 회장 이돈명 변호사는 민통련 사무처장 이부영씨를 자신의 집에서 기거케 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읍니다. 양심에 떳떳하고 도덕적으로 남의 존경을 받는 이런 일을 이돈명 변호사는 했읍니다. 그 행위는 그리스도를 본받은 이웃사랑의 실천이요. 거룩하다고까지 할 수 있읍니다. 법이 도덕과 양심과 충돌하 때, 신앙인이면서 법조인인 이돈명 변호사는 양심의 법, 하느님의 법을 따랐읍니다.
그런데 이부영씨는 왜 남에게 필경은 피해를 줄수밖에 없는 도피생활을 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우리가 들어 알게 된 바에 의하면 자신과 관련단체가 바로 용공좌경의 이 굴레를 결코 쓰지않기 위해 도피할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만약 법원의 정당한 편결결과 용공좌경으로 매도되지 않는다는 확신만 선다면 구태여 도피생활을 해야할 이유가 없었다는것입니다. 선량한 사람에게 있어 용공좌경으로 매도되고 처단되는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는 이돈명 변호사의 법정진술에서도 나타나고 있읍니다.
또한 용공좌경으로 매도하고 처단함에 있어서도 거기에는 맞는 사람보다 때리는 사람의 아픔이 있어야 하겠읍니다. 1982년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의 법정에서 문부식군은 『민족의 동질성과 아픔을 가지고 나를 때린다면 나는 내가 설사 그 매질에 맞아 죽는다 하더라도 달게 맞겠읍니다. 그러나 같은 민족으로서의 고뇌를 외면하고 미워하는 매를 때린다면, 나는 다년코 그매를 거부합니다』고 말했읍니다. 우리가 꼭 때리고 타일러 깨우쳐야 한다면 우리에게는 맞는 사람보다 매를 든 사람에게 더 큰 아픔과 사랑의 정신이 거기에 깃들어있어야 하겠읍니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가 용공좌경의 굴레로부터 함께 해방될수 있을것입니다.
8, 우리사회에서 외관상으로는 질서가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인권이 존중되는 공동선, 합법적 자유, 빈곤한 계층의 향상이 방해받는 가운데서는 참다운 질서가 없고 오직 거짓질서만이 있을뿐입니다. (평화를 위한 정의의 활동5). 우리는 특히 가난이 자신의 탓에서만이 아니고 우리사회의 구조와 정책의 모순때문에 어쩔수 없이 가난하게 살고있는 사람들의 인간답게 살권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수 없읍니다. 참된 자유, 바람직한 인권의 상태는 주리는자가 배부르고, 묶인자가 풀리며, 헐벗은 자가 입고, 병든자가 나으며, 죽은자가 영생하고 절망한 자가 영원한 희망을 얻는 상태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그러하셨듯이 굶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헐벗은 자, 병든자, 감옥에 갇힌자 (마태25.35~36참조). 죄인들(마르2.17). 바로 저 무거운짐에 눌려 신음하는 자 (마태11.28)등 보잘 것없는 사람들 중에서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마태18.19) 그들을 오히려 예수님 사랑하듯이 사랑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순간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희생당하고 있는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추위에 떨면서 끝내 삶의 터전을 쫓겨날지도 모르는 상계동등 도시철거민들의 고통을 묵상하고 거기에 동참하고자 하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하겠읍니다.
교회가 곤경과 궁핍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은 바로 복음적헌신입니다. 교회는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게,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게(고린II8.15).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 계층과 계층, 지역과 지역 사이의 모든 차별과 불균형이 사랑의 실천과 사회정의의 구현으로 합당하게 바로 잡아지도록 하는 윤리적 힘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결국 우리 사회의 모든 체제와 기구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보다 인간적인 세계의 건설, 곧 인간화는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고 끝없이 일깨우시는 그 소명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사업, 새로운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인권회복은 바로 인간회복이요. 인간회복은 곧 진리의 주(主)이시요. 정의의 주(主)시요. 사랑과 생명의 주(主)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인간안에 회복시키자는 것입니다.
오늘 어두운 인권상황속에서 인권주일을 기리면서 인간의 존업성을 복음적가치로 인정하는 우리의 인권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우리교회 내부와 사회에서 새롭게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우리는 성탄을 앞두고 이 추운 겨울을 감옥안팎에서 나야하는 수많은 정치범과 그 가족, 그리고 죄없이 쫓겨 거리를 방황해야 하는 수배자와 그가족들에게, 도시철거민과 노동자 농민에게, 하루속히 자유와 해방의 날이, 인간다운 삶의 날이 오기를 함께 기원하는 바입니다.
1986년 12월 8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추기경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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