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꼬데모와의 대화에서 사람은 새로나서 하느님나라에서 영원히 산다고 가르치신 예수는、사마리아여인과의 대화에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산 물을 약하셨다. 그 물은 바로 예수의 말씀을 믿는 일이었다. 이 믿음은 죽지 않고 사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당신의 말씀을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께서 생명을 가져다주는 분으로 나타나신다. 생명을 가져다주는 예수、이것이 오늘 대목의내용이다.
갈릴레야로 전도여행을 떠난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에서 이틀을 지내시고 사흗날이 되던 날 목적지 갈릴레야로 떠나셨다. 요한복음서에 가끔 언급되는 사흗날이라는 기간은 예수께서 사흗날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다. 갈릴레야에 들어가신 예수께서는 그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것은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 축제에 갔다가 거기서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았기 때문이었다(요한 2ㆍ23~25). 그때 예루살렘의 유대아인들은 예수의 기적을 보고 믿었으나 예수께서는 이 태도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갈릴레야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같은 태도도 예수께서는 그리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너희들은 무슨 표적이나 기적을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는다』라는 힐책을 하셨다. 『우리는 직접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참으로 구세주라는 것을 믿게 되었소』라고 한 사마리아인들의 믿음과 대조된다. 그러나 기적을 보고야 믿는 믿음은 보고도 믿지 않는 것 보다는 낫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의 약한 믿음을 굳히려고 확신을 주는 말씀을 하시고 기적으로서 확인시켰다. 『집에가 보아라、네 아들은 살아있다』라고.
그런데 예수께서 갈릴레야로 떠나셨고(43절) 그곳에 도착하자 환영을 받으셨다고(45절)했는데 44절의『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 고 하신 말씀을 삽입한 것은 성서학자들이 해석하는데 애를 먹는대목이다. 이 말은 예수께서 고향인 나자렛에서 사람들의 배척을 받고 한 말인데(마르6、4:루가4、24) 여기에 삽입되어 있어서 앞뒤구절의 논리가 맞지 않는다. 고향땅에서 당신을 배척하실 것을 알고 나자렛에는 가지 않고 곧바로 가나로 가셨다는 말인지、예수는 기적을 행하는 자로만 받아들이는 갈릴레야인들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예언자로、그리고 구세주로 받아들인 사마리아인들과 비교하여 평가하는 말인지 알 수 없다.
하여튼 예수께서는 가나로 다시 가셨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첫 기적의 곳이라는 것을 요한은 힘주어 말하고 있다.
여기서 또 기적을 행할 것인데 이번에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치유의 첫 기적이 될 것이다. 가나에서 한나절 여행길 거리에 있는 가파르나움에 사람들이 왕이라고 부르는 헤로데 안티파스의 신하 한 사람은 그의 아들이 열병으로 죽게 되었다. 유대아인으로 추정되는 그 신하는 예수께서 이 곳에 오셨다는 소리를 듣고 아침 일찍이 길을 떠나 정오때 가나에 왔다. 예수를 만난 것은 한시쯤이었고 그는 자기 집에 가서 아들을 고쳐달라고 청하였다. 그도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기적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희는 기적을 보고야 믿느냐』예수의 대답이었다. 거절이었을까? 하여튼 그 신하는 포기하지 않고 졸라댔다. 예수께서는『집에 돌아가라、네아들은 살아있다』라고 말씀하셨고 이 말씀을 믿고 그는 돌아갔다.
그의 믿음은 자기 아들을 살렸다. 돌아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아드님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전하였고 그 시각은 예수께서『네 아들은 살아있다』고 말씀하신 때와 같은 시각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왕의 신하와 그 온 집안이 개종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다.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가나에서의 두 기적을 요한만이 돋보이게 내세우는 것은 요한 특유의 상징주의적 교리제시 때문이다. 우선 가나의 잔치와 열병든 아이의 치유기적은 닮은 데가 있다. 기적을 요청한 사람이 예수께서 자기 청을 들어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 가나잔치에서 마리아는 아들이 기적을 행하여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가파르나움의 신하도 그러하였다. 두 기적의 경우 예수께서는 일단은 거절하는 태도를 취했으나 아주 거절하지는 않았다. 두 경우에 기적이 일어난 것은 원격의 기적이었다.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첫 번째 기적에서는 잔치공동체의 흥을 깨지 않게 해주셨고 두 번째 기적에서는 생명을 되돌려 주었다. 이렇게 가나는 교회를 상징한다.
초생교회에서 성체성혈을 사랑의 잔치에서 나누며 즐거움에 젖은 신자들은 마리아의 요청으로 아드님 예수의 은혜를 받고 있음을 요한은 가르치려는 것이었다. 두 번째 기적에서 예수는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나타났다. 그치유의 기적은 첫 번째보다 더 먼 곳에서 일어났다. 예수께서는 교회 안에서 어느 곳에 있는 사람에게도 생명을 주시는 기적을 행하신다. 그리고 그 생명을 청하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얻을 수가 있다. 첫 번째 기적에서는 교회의 초석이 될 제자들이 믿음을 얻었고 두 번째 기적에서는 신하의 온 집안이 개종하여 예수를 믿었다. 초생교회에서 많은 민족이 집단으로 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믿고 있는 것을 상징한다.
<서울가톨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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