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이란 마태오복음 5장7절 예수님의 산상설교 행복선언에 나오는 유명한 말씀이다.
성서신학사전을 보면 자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라하임」이란 단어인데 그 뜻은 한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한 본능적 애착을 말한다. 이는 불쌍히 여지는 마음으로서、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일에는 동정심으로서、죄에 대하여는 측은하게 여기고 용서하는 뜻으로 쓰인다.
마태오복음서에 나타난「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의 자비는 염려、보살핌、동정의 뜻으로서 정의의 본질적 관점을 포함하고 있다.
이와같은 자비의 뜻은 하느님의 선물로서 주어지는 자비이다.
자비는 하느님의 완전하심과 하느님의 보살피심을 체험한 인간들을 통하여 드러나는 표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체험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출애급기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내 백성들이 에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외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나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에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으로 데려가고자 한다』하느님의 자비하심은 이렇게 불의에 희생된 이들에게 대한 동정과 연민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하느님의 자비는 또한 치유를 가져온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들이 데리고 온 병자들을 고쳐주셨다는 마태오복음 14장14절의 말씀이나、절름발이와 소경 벙어리 그밖의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다는 성서의 많은 기록들은 하느님의 자비가 치유로서 드러나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이야기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쫓아다니던 이들의 배고픔을 측은히 여기시고、이들을 빵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배불리시고자 하셨을 때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 빵을 떼어 나눠주신 예식은 배고픈 이들을 측은하게 생각하신 자비의 표현이었다.
성체성사의 예표라고 할 이 기적에서 드러난 주님의 자비하심은 굶주린 인간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마태오복음서는 성체성사를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계약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자비로운 계약은 구체적으로 상처받은 이들을 감싸고 치유하는「치유의 계약」、굶주린 이들의 배를 채우는「빵의 나눔의 계약」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자비로운 계약은 역으로 상처로 고통받는 상황과 굶주림으로 드러나는 빈곤에 대한 반대의 표지로도 나타난다.
이 말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나타난 계약과 이 세상에 나타난 소외에 대한 정면갈등을 자비를 통하여 드러내는 것이 바로 성체성사라는 것이다.
성체성사는 그러한 뜻에서 치유라는 측면과 자원의 나눔이라는 실천적 측면이 계약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충실성으로 드러난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치유와 나눔은 개인적인 차원、개인과 개인의 차원、공동체적 차원에서 구체화된다. 이 치유와 나눔이 이세상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드러났을 때에만 이 계약은 기쁜 축제、즉 잔치인 것이다. 구체적 치유와 나눔이 없을 때 인간이 거행하는 축제는 바로 우상숭배이다.
고통받고 상처받은 이들을 어루만지고 치유하여 주고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에게 빵을 나누는 자비의 계약으로 실현될 때 우리는 기쁨의 축제를 올릴 수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하느님의 자비는 율법이나 계율이나 법전이나 예배보다도 우선하며 자비가 있은 연후에 율법이나 계율이 있음을 인정한다.
가난한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으면서 바치는 제사에 하느님은 고개를 들리시며 가난한 사람들의 한이 풀리지 않을 때 바치는 부자의 예물은 거절하신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바오로사도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 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여러분이 모여서 나누는 식사는 주님의 성찬을 나누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여서 음식을 먹을 때 각각 자기가 가져온 것을 먼저 먹어치우고 따라서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날카롭게 지적한 것은 바로 주님의 식탁、즉「밥상공동체」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으라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보서에 나오는 말씀이다.
그러면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상처로 고통받고 굶주림으로 배고파하는 이들、불의의 희생으로 한이 쌓인 이들을 주님의 식탁에 앉혀 진정한「밥상공동체」를 구현하는 이들이 바로「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이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짊어지고 계신 여러분!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가난하고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과 자신을 나누십시오.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하고、너무 많은 말을 듣는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우리는 말만한다. 이제는 행동을 할때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하느님의 현존을 증명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는 일이다.
『자비를 베푸는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오태순
<신부ㆍ서울 천호동본당주임ㆍ한마음 한몸운동 전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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