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위의 말은 또 한 번 내 마음을 감동시켰다. 아니 그의 이론이 나를 감동시킨 것이 아니라 그의 말 속에 살아있는 그의 신념이 내 마음을 흥분시켰다. 천주님에 대한 그의 이론을 내가 받아들일 수는 없었으나 자기 신념을 참으로 믿고 그 신념을 자기 일상적 삶 안에 실현화시킨 한 인간의 성실성이 그의 말의 생명처럼 어감(語感) 안에 살아 있었고 바로 이 생명이 내 마음에 전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성실성과 신념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듯 지성적으로 빛나는 그의 얼굴 표정은 확신으로 충만돼 있었다. 그의 이러한 표정과 태도는 마치 단두대에 오른 한 순교자의 태도와 표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이 현실에서 천주님의 존재를 생각하고 그분의 전능과 절대적인 사랑을 묵상할 때마다 내 어린 신앙에 잔물결을 일으키던 한 줄기「회의」의 정체를 김상위가 똑바로 보게 해주는 듯 그의 말에 일종의 동감을 느꼈다.
그리고 천주님께 대한 신앙을 버리고 공산주의자가 된 거기에는 내가 모르는 상당한 이유와 그 어떤 고민과 증명이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김상위의 무신론 앞에 내 신앙을 변호해야만 했다.
『김상위 동지 당신의 말과 신념은 내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음을 숨기지 않소. 그러나 방금 동지가 열거한 이 모든 이유는 천주님께 대한 신앙을 포기할 만한 하등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오. 우리 인간 삶의 부조리와 이 사회의 암적 요소인 악의 존재와 선량한 사람들이 악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 이「스캔달」과 그 외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리 만치 많은 인간 삶의 모순은 당신을 공산주의자들이 처음으로 발견한 것도 아니며 또한 경험한 것도 아닐 것이오.
이 모든 것은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했고 또 인류와 함께 존속할 것이오 이 역사적 과정에서 악의 존재를 구실 삼아 천주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혹은 반항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동지가 거부하는 천주님을 믿어 왔고 오늘도 그분께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드리고 있소.
그들 중에는 위대한 사상가와 성인군자도 있었고 세속적 부귀영화를 내던지고 수도자가 된 분도 있었고 하나밖에 없는 청춘을 바친 사람도 허다하며 죽음으로 신앙상의 진리를 증명한 많은 순교자도 있었소. 지금 동지가 말한 그러한 허무맹랑한 종교와 천주를 위해 그분들이 그러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거기에는 동지가 아직 이해 못하는 신앙의 신비와 진리가 반드시 있을 것이오.
하여튼 우리는 하루의 나쁜 날씨 때문에 일주일간 계속된 좋은 기후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오. 다시 말하면 잠시의 행복을 구실 삼아 지난날의 오랜 행복을 잊고 현실을 원망함도 하나의 역설이며 모순일 거요.
선과 악이, 행복과 불행이, 기쁨과 슬픔이 숨바꼭질하는 이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인간 삶의 목적을 알아야 하며 우리의 모든 행위는 이 목적에 질서 지어져야 하며 이 목적에 도달하는 인생 과정에서 천주님의 섭리를 찾아야만 하오. 그리고「사랑하라」는 천주님의 계명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며 보다 살기 좋은 사회 건설에 너도 나도 손잡고 일하는 협조자가 되어야 하오』
『동무, 동무의 우직한 신앙을 동정하오. 아니 존경하오. 그러나 천주라는 신은 그실 존재치 않소』
『그러면 김상위 동지는 천주님의 부존재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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