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나마 다 없어지기 전에 순교 선열들이 남긴 유품과 교회사 자료를 다만 한 점이라도 더 수집해 보자는 뜻에서 정원진 박희봉 신부와 일행이 되어 찝차를 몰고 이곳저곳을 헤매인 지 5년째 접어들었다.
노구의 은퇴사제이지만 교회사 발전에 조그마한 보탬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 제 발로 뛰어다니다 보니 그간 수집한 유품이 2백여 점 각종 사료가 3백여 점쯤 되나 보다.
이것들을 우리 나름대로 정리해 지금「절두산 순교복자기념관」에 보존해 놓고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인 한국 가톨릭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주어사 옛 절터에서 뒹굴던 주어사 비석 발견은 무거워지는 우리의 걸음에 채찍을 가해 준 좋은 계기가 되었다.
작년 10월 25일 일행은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상품리 주어사 절터를 찾아 나서면서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 서울서 두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이 상품국민학교. 마을 노인이 가리키는 대로 서남쪽에 솟은 66 앵자산(7미터) 동쪽 허리를 끼고 10여리 올라간「두부골」이라는 곳에 절터가있었다.
7백 평쯤 되는 절터엔 잡초만 우거졌고 그 앞 광장은 논으로 변해 있었다.
이곳은 195년 전인 1779년 당시 남인 시파의 거장 권일신 정약전 이가환 이승훈 등이 처음 천주교를 토론했고 그 근본을 좀 더 알기 위해 대표를 북경으로 보내기로 합의, 그 대표인 24세의 이승훈이 1784년 북경에서 영세를 받는 동기가 된 말하자면 한국 가톨릭의 요람인 곳이다.
꼭 무엇을 얻으리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감회에 비해 허전한 마음으로 절터를 내려오는데 오른쪽 언덕에 높이 60㎝ 가량의 비석 같은 돌이 버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혹시나 해서 달려가 바로 세우고 흙을 털어 보니 전면에는「海雲堂大師 義燈之碑」후면에는「崇정紀元後戊寅五月日立」이라고 쓰여진 비석이 아닌가.
이 절에 있던 어느 대사를 기념해 세운 비석이었다.
동행한 논 주인 이종성(68) 노인 말이 자기는 가운데 있던 것을 얼마 전 들어 냈다는 것이다.
비석을 세운 연대는 1698년으로 학자들이 천주학을 토론하기 81년 전에 세운 것이나 주어사 한국 가톨릭의 관계로 미루어 우리에겐 귀한 비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종성 노인에게 이 같은 내역을 말하고 기증해 달라고 청하자 노인은『좋은 데 모셔 두면 제 마음도 좋지요』하면서 선선히 승락한다.
진흙 속에 묻혀 없어질 뻔한 주어사 옛 절터의 유일한 유적인 이 비석은 지금 양화진성당 뜰에 옮겨져 우리에게 많은 옛 사연을 되새겨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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