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요한은 그의 저서에서 시간상의 전후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투시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신비의 연장이요 영상으로서의 교회관을 보여주고, 교회의 사회적 성격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는다. 사실 그의 복음서나 서간에서 한 번도 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묵시록에 나오는 교회라는 단어는 그 지역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복음선포의 목적
요한은 그의 서간에서 복음선포의 목적을 잘 말해준다. 『우리는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우리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들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목적은 우리가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를 여러분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1요한1, 1~13).
이러한 친교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요한3, 16~17). 이렇게 예수께서 자신의 몸으로 이룩하신 구원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느님과의 친교에 들어갈 수 있고 이 친교가 교회의 본질이다.
『나는 포도나무이며 너희는 가지이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15, 5). 여기서 예수는 우리를 가지라 하시면서도 자신을 포도줄기라 하지 않고 포도나무라 하셨는데, 이는 나무인 예수 안에 우리가 가지로서 참여하는 가장 철저한 일치를 암시하고 있다.
친교의 공동체
이러한 친교는 하느님과 개인과의 친교에 국한되지 않고 친교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어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 양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 음성을 알아듣고 마침내 한 떼가 되어 한 목자아래 있게 될 것이다』(요한10, 14~16).
최후만찬에서도 이 양의 무리의 일치를 기원하셨다. 『나는 이 사람들만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요한17, 20~21).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한17, 3) 이기에『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수 없다』(요한14, 6)하시면서 하느님과의 친교에 들어가려면 예수를 믿고(요한4, 39:6, 35)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야한다(요한3, 5) 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과 세례가 참으로 영생의 길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면서(1요한2, 23~27) 형제들 사이에 애덕을 실천하고(1요한4, 20~21:5, 1~5)죄 없는 생활로 그 신앙을 증거해야 한다(1요한3, 9). 그래서 주님은 구약에서부터(신명6, 4~5:레위19, 18)너무나 잘 알려진 사랑의 계명을 다시 강조하시면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13, 35)하셨다.
초대교회의 수난
요한의 영성적 신비적 표현 때문에 사람들은 요한이 개인적 신앙 또는 종말론적 교회만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였지만 요한은 초대교회의 박해받는 신자들에게 인격적인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면서도 신앙의 공동체적 성격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가야파 일당이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면서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요한11, 50)고 말한 것을 요한이 해석하기를『그 예언은 예수께서 유다민족을 대신해서 죽게 되리라는 것과 자기민족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 죽는다는 뜻이었다』(요한11, 15)하였다.
사실 예수께서는 주위에 제자들을 모으셨고(요한1, 35~51)열두 사도들을 특히 선정하시어(요한6, 67ㆍ70~71)그들을 특별히 교육하셨다(요한12, 7~8ㆍ27~36). 그리고 부활 후에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내양들을 돌보라고 당부하셨고(요한21, 15~17)제자들에게 사죄권을 주셨다(요한20, 23). 요한은 교회설립의 약속이나 제자들의 파견을 묘사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설립이나 파견의 의미를 충분히 말하고 있다.
교회의 성사적 구조에 대해서는 세례와 성체에 대해서는 명백히 말하고 있다.
실로암못가에서 소경을 치유하시면서 물의 정화력을 암시하셨고(요한3, 1~21) 빵의 기적 후에(요한6, 1~15)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요한6, 51~52)하셨기에 주님의 말씀을 글자대로 들은 사람들은 놀라서 주님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요한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서 발생하였음을 복음에서 묵상하고, 교회가 박해 가운데서 투쟁하는 모습을 서간에서 묘사하고, 교회를 묵시록에서 보여 준다.
교회가 당할 박해를 주님은 예언하셨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나를 먼저 미워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그들이 나를 박해했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도…그들은 너희가 내 제자라 해서 이렇게 대할 것이다』(요한15, 28~21).
교회의 수난ㆍ승리
요한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적이 오리라는 말을 들어왔는데 벌써 그리스도의 적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1요한2, 18). 그러나『하느님의 자녀는 누구나 다 세상을 이겨냅니다 그리고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요한5, 4)하면서 신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마침내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한 교회는 그의 승리에도 참여한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께 대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하지만』(묵시14, 12)결국『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다. 그들의 업적이 언제나 남아 있기 때문이며』(묵시14 13)『하느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묵시21, 3).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