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모가 나 자신보다 다른 형제를 더 사랑한다고 믿고 있다면 참으로 불행하다.
『대장은 왜 나만 미워하는 거예요ㆍ』
코메디 속의 이런 항변은 관객으로서 듣고 웃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끼리 애정의 불균형이 온다면 바로 그 장본인은 괴롭고 슬프게 되는 것이다.
계희가 바로 그런 경우의 처지였다. 봄이다간 어느 날 계희 어머니가 격앙된 목소리로 사정을 털어 놓았고, 의논하면서 내가 계희를 만나 보기로 했다. 약속된 시간에 계희가 찾아온 것만으로도 기특해서 반갑게 맞이하는 내게 계희는 차가울 정도로 수줍음을 나타냈다. 다소곳하게 앉아서 꼭다문 입을 좀처럼 열지 않았다. 나는 계희 어머니가 주고 간 글을 가리켰다.
『여기 있는 편지 네가 썼지ㆍ지금도 이 내용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니ㆍ』
똑바로 눈을 지켜보며 또박 또박 물었다. 그 편지는 어버이날에 학교에서 전학급생이 각자 부모님께 감사의 글을 쓰고 집으로 우송한 것이다. 분명히 이 편지는 계희 어머니가 충격적으로 받아들일만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로 드러내지 않고 있었지만 자기 동생만을 사랑하고 있는 부모가 싫다고 했다. 어머니가 더욱 그렇다고 했다. 동생이 아주 밉다고 썼다. 그런 부모를 멸시하고 있으며, 어버이날에 마음에 없는 감동적인 글을 쓰자니 자신까지도 저주스러워 진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차분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계희가 맹랑하게만 보였다.
『어머니께서 이 편지를 읽으시면 속상하시고 실망하실 거라는 생각은 안해보았니?』나는 재차 물었다.
『전 거짓말을 쓰고 싶지않았어요』
어이는 없었지만 계희는 어머니 말대로 똑똑한 아이였다. 그리고 그 말이 솔직한 대답이라고 믿을 수 있었다.
『부모님은 왜 동생을 더 귀여워하실까? 계희가 생각하고 있는 걸 말해 봐』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서 만났을 때 계희는 적어온 쪽지를 내밀었다. 나와 만났던 그 전날들, 불평(ㆍ)의 내용을 적어왔던 것처럼.
공부도 나보다 잘하고, 얼굴도 나보다 예쁘고(계희는 검은데 동생은 희다), 심부름도 잘하는 천사다(아버지가 동생에게 붙여준 애칭이다). 이런 내용의 나열인데 비뚤어진 심사로 쓴건 아니었다. 계희는 동생을 사랑하고 있구나하는 확신같은 믿음이 왔다.
계회에게 큰 변화가 온 것은 가을이었다. 갑자기 환절기에 감기로 앓아 누웠었던 초등학교 꼬마적 생각이 났던 것이다. 열이 높은 딸아이를 가운데 놓고 밤을 새운 부모님. 그때는 열 때문에 분명한 상황을 몰랐었지만 몸이 약하신 아버지가 몸살이 났을 때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계희 이마에 물수건 갈아 대느라고 밤을 새우신걸 보고 당신 건강을 크게 믿었었거든요』
이 말이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때 어린 동생은 제 인형을 가져가 주었었다. 꼭 한번만 만져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가 어머니께 꾸중을 들었던 바로 그 인형을 계희 품에 안겨주었었던 것이다.
극적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계희는 표정이 밝아지고 눈동자의 움직임이 신선해졌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 후 계희는 옛 앨범 속에는 자신보다 동생의 사진이 열배나 더 많고(과장했노라고 계희는 나중에 말했다), 맛있는 과자가 있을 때 동생 몫을 꼭 챙기고, 시험이 있는 날 유난히 동생만을 격려하게 됐다. 마음 아파서 일기장에 수없이 낙서했던 계희가 스스로 되돌아 온 것이다. 철이 난거라고 계희의 어머니가 좋아했다.
그즈음 쌍둥이자매의 불화가 심각한 경지까지 간 것 때문에 그 어머니와 만나게 되자 계희 어머니도 협조해 주는 마음의 여유를 보이게 되었다.
『아이들은 아주 예민해요 조건 없이 똑같이 사랑한다는 걸 수없이 증명하면서 살지 않으면 편애한다고 단정한답니다. 그래서 비뚤어지는 일이 생긴답니다』
그 쌍둥이 자매 어머니가 계희 어머니에게 바싹 다가서서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계희는 동생을 미워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