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토끼」란 요즘 만들어낸 이야기거나 단지 아이들의 친구역할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실제로「부활토끼」가 있었다는 사실인 1758년 7월28일자 공식문서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활토끼의 유래지 독일「안스바하」에 있는「카로리눔」이라는 학교기숙사에서는 놀랍게도 이 공식문서를 찾아볼 수있다.
이 문서에는 부활토끼가 낳은 부활달걀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물론 실화가 아니라 전설적인 이야기이다.
이 전설적인 부활토끼의 주인은 요한프리드리히 푸르만이라는 명망있는 산지기였다. 이 산지기가 직접 잡은 야생토끼가 4년 동안 매년 부활절마다 달걀 한 개씩을 낳았을거라 말했을 때 아무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후 이 야생토끼는「부활토끼」로 불렸으며 국경너머에까지「안스바하의 부활토끼」로 널리 알려지겨 되었다.
그러나「안스바하의 부활토끼」보다 더 일찍 1682년 게오르기우스프란쿠스의 의학 논문 속에 부활토끼와 부활달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프란쿠스는 이 논문에서도 실제로 토끼가 달걀을 낳았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다만『사람들이 토끼가 가져온 달걀이「팔쯔」, 「베스트팔렌」, 그리고「알사스」에도 감추어져있다』고 생각하였다. 프란쿠스는 부활절에 붉은 달걀을 먹은 사람은 건강하고 생기있게 오래 산다는 속설을 지지하는 것으로 만족해했다.
오늘날 부활달걀로 통상 이용되는 채색 달걀은 오래 보존할 수 없기 때문에 부활달걀은 초콜렛, 사탕, 빵반죽, 심지어는 금과 은으로 만들어 지기도 했다. 러시아 황제는 자기 가족에게 금과 보석으로 만든 부활달걀을 선물하기도 했다.
교회의 전성기를 맞아 달걀은 전례에 있어 부활전야에 축성되는 부활 성찬 음식으로서의 위치를 갖게 되었다. 사순절에 달걀을 먹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었다. 생명의 상징으로서 달걀은 새로운 생명으로 제사지내는 그날에야 비로소 먹을 수 있었다.
교회에서의 달걀 축성은 12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새로운 색채기술이 발달되었고 밀납과 도금이 첨가물로써 사용되면서 오늘날과 같이 손쉽고도 다양하게 부활달걀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문화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