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촌 내에는 전기가 없다. 그러니까 현대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난민들은 밤이 되면 호롱불을 밝히고 살수밖에 없다.
이것도 돈이 있는 난민들은 연로를 구입해 사용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난민들은 자연의 설리에 따라 낮에는 해, 방에는 달빛에 의존해 생활 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으로 인해 이곳대부분의 난민들은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고 보통 새벽 4~5시에 일어난다.
그러나 기상시간이 이와 같이 일러도 충분한 식량이 제공되지 않아 이들은 보통 오전11시에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문화적 혜택과 여유가 주어진다면 분명 이들은 하루 세 끼니의 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새해 기간 동안 알퐁소 신부와 나는 난민촌 지역을 돌아봤다. 이 기간 중 어느날 알퐁소 신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곳 난민들은 이 새해 기간 동안만 정신적인 안정을 누립니다. 왜냐하면 이 기간에만 음식이 풍부하고 이들이 놀 수 있는 오락의 자리가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폴포트가 캄보디아를 공산화 시킨 1970년대 중반부터 삶의 터전을 잃기 시작, 급기야 조국을 벗어나 국경 근처에서 거의 5년여 간을 감옥과 같은 삶을 살아온 것이다. 즉 이들의 삶이 파탄되기 시작한지 10여년이 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아픔과 상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마치 6ㆍ25전쟁 이후 백만여 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생겼고 거의 40여년이 흐른 지금도 이들의 아픔이 계속되고 있는 것과 같다.
이들은 폴포트 정권 아래에서 인구분산의 정책이라는 미명으로 부모 형제 친구가 옆에서 죽어가도 도움한번 줄 수 없었던 처지를 겪었다.
난만에 수용된 이후 이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배급제로 공급받아 살고 있으며 태국군인의 감시 하에 노동의 대가없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 아이들 역시 어른의 무력감을 완전히 벗어나 생활하고 있지는 못하다.
또한 이곳의 아이들은 충분한 영양섭취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간식이라고는 평소 찾아볼 수가 없다. 아이들은 단지 어쩌다 사탕수수 줄기를 하나 얻어 줄기의 단물을 빨아먹고 버리는 것이 간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이다.
아이들은 외국인만 보면『솜 무이 바트(1바트만 주십시오)』라고 조른다. 이 어린아이들은 얼굴에는 콧물이 흐르고 헤어진 옷과 맨발을 하고 다닌다.
아이들은 외국인들이 자신들을 측은하게 여기든 말든 그저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웃음을 짓곤 한다.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솜 무이 바트」라는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인간을 최악의 동물적인 성향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이곳의 상황이요, 어찌보면 이곳이 세상악의 산물이자 구조적 모순의 피해가 응축된 곳이 아닐까? 세상 사람들이 이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보여줘도 이들에게는 한가닥 빛이 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을까…』
■연락처=Gabriei je S. J. P. O. Box2 TAPRAYAPRACHINBURI 25180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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