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 가는 과정에서 신부수녀들은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래도 수녀들은 수도복을 입고 있어서 신분이 확실하게 증명되었고 대부분이 구라파 수녀였으므로 파악이 용이하였다. 이런 이유로 군인들은 대구ㆍ부산행열차에 수녀들을 많이 태워 보내주었다. 그러나 신부들은 양복을 입었고 증명서가 없으면 외인과 같이 취급되었으므로 신분증명이 안되어 왕왕 생겼다.
대구로 피난가기 전 지금 대구가톨릭대학장 신부로 있는 정하권 신부(당시는 신학생)가 내게 와서『잘 아는 분이 증명서가 없어 강을 못 건너고 있다』면서『신부님명함을 몇 장 주십시오』했다. 상황이 급박했지만 신부의 명함을 함부로 남발할 처지도 되지못했으므로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으나 정 신부가『신부님 명함이라면 충분히 통과시켜줄 것』이라고 사정하기에 명함을 건네주었다. 이때 왜관에 주둔해 있던 미군들은 낙동강 인도교 폭파 후 간첩들의 잠입을 막기 위해 일일이 통행증검사를 했었다. 부산 쪽으로 피난을 가려면 강을 반드시 건너야 했으므로 사람들은 강 건너기에 필사적이었다. 그래서 신분증명문제로 애태우던 몇몇 신부들은 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피난 첫날을 비산동성당에서 보낸 나는 당시 공소였던 침산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쪽으로 옮기니 공소교우들은 성모승천 축일 때까지 묵어가라고 권유하였다 때는 혼란스러웠어도 신부가 공소에 묵게 되어 무척 기쁜 모양이었다.
인민군이 낙동강전선까지 밀고 내려오자 대구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삼덕성당에 잠시 들러 박상태 신부를 만나고 있던 어느 날 괴뢰군이 팔달교까지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침산공소에 가서 짐을 챙긴 후 주교관으로 갔다. 이때 최덕흠 주교는 나에게 당시 교구청에 피난 와있던 수녀들과 부산으로 피난 갈 것을 명령하셨다.
주교님은 교황청에서 보내온「언제든지 목자는 신자가 다 떠난 후 피신해야한다」는 지시로 상황이 더 악화될 때까지 교구청에 남아 계셔야했다. 이때 대구에는 교구청신부와 사무직원 등이 모두 피난을 가고 최 주교와 이종필 부주교, 그리고 계산동 주임이었던 서정길 신부만이 남았다.
부산에 도착, 중앙성당에 가보니 성당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성당내부의 모든 시설은 피난민보호소로 쓰여지고 있었고 성당안도 감실만 천으로 가려놓은 채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서울 신부들까지 피난 온 형편이라 그곳에 계속 있기가 미안했다. 당시신부들은 교황청에서 생활보조를 받고 있던터라 방을 얻어 생활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이러한 생각을 부산 청학동에 살고 있던 아버지 친척에게 하였더니 그분은 펄쩍뛰면서『신부가 성당에서 살지 뭐하려고 방을 얻느냐』며 영도에 있는 성당으로 오라고 하였다. 영도에는 서정길 신부가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보름정도 생활을 하였다.
영도에서의 열흘은 마치휴가를 온 듯 한가하게 지냈다.
미사봉헌과 경본읽기 외에 특별히 할 말이 없이 바다가에 나가 산책을 하곤 했다. 이때 바다가에는 해녀들이 많이 있었다. 그때는 이들을 보자기라 불렀다. 그런데 지금같이 잠수복이 없던 때니 옷이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살이 거의 내비치는, 감즙을 내어 불들인 옷을 입은 해녀들을 보고 처음에는 놀라서 피하기도 했으나 눈에 익으니 괜찮았다. 며칠 지나고는 나이든 해녀와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가 되었다.
인천상륙이 시작되고 왜관수복소식이 들려오자 왜관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마침 최재선 신부가 볼일이 있어 대구까지 가는 장교가 같이 갈 사람을 구한다고 전해왔다.
그래서 그 장교와 같이 부산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고향인 밀양에서 8일 정도 머물렀다. 피난 나올 때 자전거를 가지고 왔던 터라 그 자전거를 이용, 밀양에 갔다가 대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