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그 자신이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직접 그 진실을 시도하며 가차없이 자신의 청순한 결백을 주장해서 그의 세계를 세상에 펼친다. 하얗게 구별하지 않고 자신이 닿는 곳 어디든지.
그러므로 나는 눈의 사상을 완전히 믿는 충성심 내지는 신뢰심이 대단했었다.
『진우』
대대장은 내 뒤통수를 끄는 자력 같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를 제외하는 건 당연하지. 그러나 차니와 아빠는 하나에서 물이 된 거니깐 충분히 차니는 불행해. 오 참 둘에서 셋이 됐다고 할까?』
『그건 너무 인간적이죠』
『그럼 자네는 이 담에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을 때 어떻게 취급할 텐가?』
『그건 굉장한 비약이군요』
『이봐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사이에서 생기는 자연법칙을 존중해야 해』
『그건 인간을 불행하게 한다면 난 거부하겠어요』
『그러나 이론보다 실제에 있어 자연법칙은 엄숙하고 더 정확하고 명백하다네』
『차니 아빠의 정신 이상도?』
『물론』
『형 좀더 밝고 따뜻해야 해요. 이 세상이 말예요』
『걱정 마. 차니는 순수하고 밝고 따스해. 단 너는 글렀다』
『어떤 의미로?』
『검은 과즙 같아서』
『흠 혹평 치고도 지독한 혹평인데 마음은 그렇게 받기를 거부하는데요?』
『그래 혹평이라고 생각하지 않길 나도 바라지. 그런데 말야. 이 방에 단 둘이 있네. 관심사가 틀리다면 대번에 전쟁이 불겠지. 바다가, 눈이, 뭐 하늘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런 전쟁을 비웃어 줄 거야. 이런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같은 관심을 나도 적도 가져서 평화를 유지해야지. 이 담에 이방법으로 성공하거든 날 잊지 말게. 아. 우리의 관심사는 차니로군』
그는「우리의 관심사」라고 했다.
그의 생각이 내 생각하고 어느 정도나 틀릴지는 모르나 어떻든 그와 내가 같은 관심을 가져서 다행하게도 적이 아닌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무척 다행한 일이었다.
나는 대대장을 차마 적이라고 생각하기가 싫기도 했었다.
금방
「아, 대대장은 차니를 사랑하고 있어 결혼하고 싶을 만큼」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마음이 뛰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대대장으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못하게 하고 싶었다. 내가 잘 아는 차니는 아마 내 편을 들어서 나을 응원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말 나는 마음으로 차니를 전부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가 내 생각을 알아차리고
『왜? 윤리 같은 것 사랑보다도 중해?』
라고 물었다면 나는 그를 속였을 것이다.
『내가 차니를 사랑하니까요』라고 대답해 버리면 그는 슬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삼촌이 조카와 결혼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그와 같은 위치에 버티고 서 있는 게 부당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부드러워져 있을 때 나는 불독처럼 으르렁대고 있었으니까.
마음으로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내가 내 마음 속에서 전쟁을 준비하는 것과는 달리 대대장은 몹시 낭만적인 얼굴로 다시 이야기를 옛말로 끌고 갔다.
바로 사 년 전이었어. 날짜까지도 똑똑하게 기억하지.
9월 이십구 일.
우린 삼사관학교 체육대회 겸 국군의 날을 맞아서 서울엘 올라갔지.
차니 엄마는 오래 전부터 앓고 계셨어. 외박이 허락되었을 때 난 차니에게 달려갔는데 공교롭게도 추석날이었어.
자기 엄마 옆에 앉아 있는 차니를 상상해 봐.
차니는 그녀의 부모에게서 불행과 허약함과 그리고 신비스런 눈을 선물로 받은 것이 확실해.
그날도 먼 눈 가득히 자기 엄마를 빨아들이고 있었어. 무서울 정도로. 정말 너무 무서웠다. 걔는 너무 조그만 애였어.
엄마가 잠들자 우린 차니의 방으로 건너왔지.
그때 나를 당황하게 하는 그 눈으로 한참을 뚫어질 듯이 보다가
『나도 말야. 내가 죽는 것쯤 아깝지 않아』라고 말했어.
놀랐지. 짐작이 안 가는 말이었어. 미처 그 애의 엄마 병이 어떻다는 데에 생각이 닿지 않았으니까.
『차니야 뭐가?』
『사랑 말야』
걔는 벌써 알고 있었어.
자기 엄마가 사랑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마 걔는 그 빈 눈으로 알아 버렸을 거야. 미쳐서 어디론가 날아버린 자기 아빠를 찾기 위해 엄마도 날고 싶어한다는 걸 알았겠지.
그리고 그게 걔에게 위대한-이 표현이 너무 과장됐다면 용서해- 샘을 파서 누구에게나 물을 줄 준비를 갖게 했을 거야.
생각해 봐. 너는 걔 아베 마리아를 한 곡 듣고도 벌써 걔를 사랑하게 됐잖아?
놀라지마. 내 방에서 벌써 알아버린 사실이야.
내가 질투하리라고 생각해선 안 돼. 샘의 물은 누구나 마실 권리가 있는 거야.
그 샘의 주인이 인자하다면 말야.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목 마른 자에게 마시게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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