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천주가 존재한다면 그 천주는 전지전능하고 전선(全善)인 동시에 사랑 자체여야만 했을 것이요. 그러면 그러한 천주가 어떻게 이 모순덩어리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었겠소.
만일 그가 사랑 자체며 전선했다면 자기 피조물들을 완전히 행복하게 만들었어야만 했을 것이고 만일 그가 전능했다면 우리 인간이 원하는 선과 행복을 충족시켜 주었어야만 했을 것이요.
그러나 동무도 생활을 통해 알다시피 사실은 그와는 정반대로 인간은 동무도 나도 예외없이 고통과 불의와 악의 희생자일 뿐이요. 전지전능하고 전선하다는 천주라는 이 신은 존재치 않으며 신의 존재란 부조리한 우리 인간 삶을 합리화시키는 일종의 가설적인 존재에 불과하오』
『김동지는 원인과 결과를 흔든다고 있는 것 같소. <모든 존재는 그렇게 존재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존재는 하나의 결과이며 이 결과는 자기를 있게 한 원인을 전제한다>란 철학적 진리가 있듯이 우리들 인간을 포함한 이 자연은 결과이며 결과인 이 현실은 자기를 있게 한원인을 필연적으로 전제하고 있소. 이 원인을 우리는 천주님이라고 부르며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는 절대자시며 따라서 그 무엇으로부터도 원인되지 않은<제일 원인>이라고 부르오. 그리고…』
『잠깐만 동무』그는 내 말을 가로막았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이 악은 하나의 결과일진대 이 악은 동무가 말하는 그 제일 원인으로부터 기인됐단 말이군요?』
『아니요. 동지는 또 오해하고 있소.
물론 현존하는 이 악은 하나의 결과인 것만은 사실이요. 그러나 이 결과가 있기까지에는 상당한 이유와 내용이 있었소. 여기 완전히 파괴되고 버려진 한 채의 집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지붕이 낡아 한쪽이 무너졌고 벽들은 사방이 헐어져 있고 대문짝은 떨어져 썩어가고 있고 또 가구들은 부서진 채 허트러져 있고 마당에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어 도저히 사람의 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치 페허해져 있다고 합시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나 집을 지은 목수나 미쟁이나 또는 이 집을 완성하기에 필요했다던 일꾼들의 존재를 부인 못할 것이요.
그리고 우리는 그 집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상상해 볼 수도 있고 또 그집이 그처럼 폐허화된 이면에는 그 어떤 원인이 꼭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요. 이와 마찬가지로 비록 이 세상이 악스럽고 인간 삶이 부조리스럽고 고통과 죽음을 일종의 숙명처럼 받아야할 우리들 인간들이라 해도 이 원인은 천주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잘못의 탓이었소.
천주님은 자기 피조물들이 불의도 부정도 미움도 시기도 고통도 죽음도 없고 다만 기쁨과 사랑과 행복만이 있는 영원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셨으나 천주님과 같이 되려면 인류의 원조인 아담의 교만이 천주님의 노여움을 사게 됐다고 결과로 현실과 같은 우리 인간의 조건이 만들어졌소. 우리는 이것을 즉 모든 악의 원인을「원죄」라고 부르며 이 원죄는 온갖 가치의 질서를 전도시켰고 그 결과로 선과 악이 사랑과 미움이 진리와 허위가 미와 추가 대립되었고 따라서 인간은 가치 판단의 기준이 흐려진 갈등 속에서 고민하며 살게 되었소.
그리고 우리는 죽음이라는 숙명을 가져야만 했소. 그러나 천주님은 원죄 이전 인간 심중에 뿌리 박은 평화와 사랑과 행복을 완전히 지워 버리지않으시고 그에 대한 향수를 우리에게 주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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