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뿐만 아니라 천주님은 당신의 독생성자 예수를 인류에게 보내시어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과 제물로 인류의 죄를 갚게 하셨고 그 분의 부활을 통해 원죄 이전의 인간 조건의 회복과 가치관의 질서의 정립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현된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주셨소.
이와 같이 우리는 이 부조리하고 모순 투성이의 현실을 원죄의 결과라고 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원죄 이전 인간 조건의 완전한 회복이라고 우리는 말하오』
『아, 저주스런 이 원죄…동무 그만 말합시다』
별안간 그의 얼굴에 일종의 심한 분노의 구름이 덮이더니 그는 이와 같이 성난 음성으로 말하며 두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나는 그의 말과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또 단순하게 말했다.
『김 상위 동지, 내 말이 동지의 기분을 상하게 했소? 원죄라는 이 말이 동지를 모욕했소?』
『기분을 상했느냐는 동무의 말과 모욕을 받았느냐는 동무의 마음씨가 화를 내기에는 참으로 순진스럽소. 그리고 동무의 신앙적 진실성을 험내고 싶지 않소. 그러나 한마디 말만은 하겠소. 이 세상의 악의 존재와 인간의 불행과 고통을 합리화시키는 바로 이 원죄라는 교리적 모순 때문에 나는 천주의 존재를 거절했소. 그리고 원죄가 가져왔다는 인간 삶의 현실적 비극 앞에 온 인류를 불행하게 만들어 놓고 인간을 사랑한 나머지 자기 아들 예수를 보내 인류의 죄값으로 죽게 했다는그런 천주의 사랑이 가소로울 뿐만 아니라 우리들 전 인간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천주를 거슬러 싸우기로 했소.
즉 다시 말해 존재치도 않은 신을 존재케 하고 인간의 비극과 불행을 합리화시키며 원죄라는 이름 아래 인류를 기만하고 사기해 온 신의 존재를 가르치는 교회를 대항해 싸우기로 했소』
『김상위 동지, 종교적 토론은 그만둡시다. 우리 인간들의 긍정, 부정에 따라 천주님의 존재 부재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 만큼 우리들의 이론은 한 점에 귀결될 수 없는 영원한 평행선을 유지할 것이요. 다시 말해 천주님의 존재는 과학의 대상이 될 수도 없으며 또 인간의 지적 이론으로 증명할 수 없는 신앙상의 진리이니 만큼 인간의 자유는 자기의 지적 한계를 초월하는 초자연적 진리 앞에 긍정 내지 부정도 할 수 있을 것이요.
그래서 인류는 유신론과 무신론으로 대별되어 있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요. 그러나 우리 인간의 할 일은 자기 신념에 충실하되 남의 신념을 존중해야 되리라고 나는 생각하오. 그런데 동지는 도대체 누구며 어떠한 종교적 과거를 갖고 있소?』
그때 나는 그의 공산주의 이론을 반박하고 내 신앙상의 진리를 변호한다는 것은 그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내 교리적 지식은 그의 무신론적 지식에 비할 수 없이 얕은 것이라고 느껴졌다. 따라서 그와의 지적 토론은 내 입장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 것이 틀림없는 사실처럼 보였다. 그는 내가 주는 또 하나의 담배를 아무 말 없이 반 이상이나 피운 다음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자기 인생 역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동무, 나는 나에게 삶을 준 그분들이 누구인지 영원히 알 수 없는 운명을 타고 이 세상에 생을 받았소. 내가 철이 든 후에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이 세상에 난 지 하루 만에 광주리 안에 눕혀져 성당문 앞에 버러져 있었다고 합디다. 그날이 바로 성 토요일 밤, 그러니까 부활절 밤미사를 지내는 날이었소.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성 금요일이었을 거요. 그래서 내 생일 잔치는 부활절 축하 자정미사 후 지내곤 했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