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IX)
제3부 26~35장은 주로 바룩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26~29장은 36~45장과 함께 예레미야의 수난사라고 불리며 30~35장은 구원에 관한 행복선언을 하고 있다.
고난의 생애를 살고간 예언자의 수난기를 알리는 26~29장을 먼저 살펴보자. 26장은 여호아하즈 王이 국외로 추방당하고 그의 동생 여호아킴이 즉위했던 기원전 608년에 발생한 사건이다. 예언자가 성전에서 자기백성을 향해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으면 성전은「실로」의 옛성소처럼 파괴될 것이라고 엄포한 성전설교(7, 2~15)를 보다 확대시킨 부분으로 본다. 예언자의 이 설교는 오만으로 가득찬 민중의 가슴에 불을 질러 그들은 예언자를 죽이려 광란한다. 그러나 의식있는 몇몇 고관들이 사태를 공정하게 판정하여 예레미야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부지한다. 여기서 주지할 것은 어떠한 예언자도 야훼의 뜻을 전달하는것 때문에 보복당
할 수 없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그랬기 때문에 바른 양심을 가진 몇몇이 예언자를 올바로 알아보았던 것이다. 이토록 인륜사에서는 보다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 불의에 대항하는 무리가 아무리 극소수라 할지라도 그 의로움을 깡그리 없애버리지 못한다는 교훈을 본다.
27~29장은 하느님의 자명한 명령이 내렸는데도 바빌론에 반항한다. 이 자실적 정책을 막으려는 예레미야의 -외로운 투쟁이 그려져 있다. 反바빌론 정책이 하느님의 명령에 어긋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바빌론을 선택하여 당신을 배반한 백성을 징벌하고자 이미 작성하셨기 때문에 바빌론은 하느님의 도구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인내와 겸손으로 이 벌을 참아받아야 하는데 이를 거역하니 예언자의 가슴은 답답할 뿐이다. 그래서 예언자는 예루살렘의 사절들 앞에 야훼의 주권적 의지를 나타내는「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상징하는 소의 멍에를 매고 나타났던 것이다.
다음장에서 예레미야는 이제 거짓 예언자 하나니야와 대결한다. 이때 하나니야는 어깨에 맨 예레미야의 멍에를 짓부수어 버리고 온갖 모욕을 퍼붓는다. 그러나 이제 누가 거짓 예언자인지는 그 결과가 말해줄 것이라는 긴박감이 독자들을 감싼다. 인간이 인간을 우롱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느님은 결코 인간에게 우롱당하실 수 없다는 것이 여기서 두드러진다.
이어서 바빌론 포로민들에게 보내는 예언자의 편지는(29장) 가까운 장래에 해방이 올 것이라고 선동했던 거짓 예언을 뒤엎고 그곳에서 살집을 짓고 장가들어 안정된 가정생활을 영위하란다. 그리고 이교백성들의 틈에 무방비상태로 살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현세적 삶에만 몰두하지 말라고 경고하여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참의미를 함께 궁구할 것을 권고한다. 이때 함께 살고있는 이교민족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함으로써 인류를 위한「빛」의 역할을 상기시켜 온인류의 복지를 위한 인간의 도리를 일깨운다. (이사야42, 6:49, 6)
30~35장은 엄밀하게 구분하자면 30~33장은 위로의 책으로 보고 34~35장은 부록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묘사된 구원의 약속들은 예레미야시대부터 포로후기까지 확장된 편집물이다.
30~31장의 밝은 소식들은 처음에는 예레미야 활동초기에 북이스라엘을 위하여서만 선포되었다가 후에 전이스라엘로 확장된다. 귀환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넘어 새인류가 출현하여 새 계약이 맺어지리라는 예언은(31, 31~34)특기할 부분이다.
이제 하느님은 미래의 어느날 엔가로 당신 백성들의 죄를 모두 용서하여 그들의 마음속에 당신의 법을 새겨서 그들 모두가 기필코 하느님을 알게되리라는 새로운 이 계약은 메시아 시대의 태평성대, 특히 하느님과 인간사이에 이루어질「새로운 관계」에 그 초점이 있다.
이 새 계약은 시나이 산의 법전을 대신할 다른 법전이 아니다. 이는 돌판에 새겨질 것이 아닌 피가 흐르는 마음에 새겨질 內心의 법전이다. 새 계약은 죄를 없애주고 머리로 보다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알아뵙게 만들어이제『하느님의 자녀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사랑의 진액을 철철 넘치게 하고있다. 이 항목은, 전체를 통해서 가장 심오하고 감동적인 귀절주의 하나로 신학의 정점을 이루면서 빛나고 있다.
32장에서 예레미야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영어의 몸으로서도 평화시에나 하는, 밭을 사는 상징적 행위를 하고 있다.
이는 폐허가될 예루살렘이지만 이스라엘이 앞으로 반드시 이곳에서 다시 사고팔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34~35장은 시드키야王이 노예를 해방했다 다시 부리는 비리를 찔러 그 행하는 만큼 당하리라는 고발이 비수같고 35장의 레캅人들이 포도주를 마시자 않는 일화는 이방인도 자기선조의 관습을 충실히 지킨다는 교훈을 주고있다.
예레미야의 고난의 생애를 통해 오늘날 주고자 하는 하느님의 전언을 썩어가는 양심에 빛밝혀 진정한 자유민으로 살기위한 길을 보여주고 있다고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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