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미사 후에 사제가 이 말을 외울 때마다 무엇인가 야릇한 느낌을 가지곤 하지만 요즘 우리 주변에서 쓰이기 시작한「복음화」라는 낱말의 뜻이 미사 후에 외우는『복음을 전합시다』와 같은 뜻인지 혹은 딴 뜻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누구에게 물어 보기도 하고 물음을 받은 일도 있으나 대개 그저「전교」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하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의 구별을 우선해 보고 다음에 차츰 배워가기로 하겠다.
인간은 군주주의시대에도 구제되어야 하고 민주주의시대에도 구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회체제와 정치문화 등의 시대적 풍토에 따라서 전교의 방법에 특이성이 있는 것이라고 본다.「복음화」라는 것은 현대적인 뜻을 가미한「전교」라고 생각하고 싶다. 가령 사회의 전통과 교회의 권위를 배경으로 즉 성품화韓「복음」을 위장적인 태도로 장엄하게 전달할 수 있었던 시대도 있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그러한 방법으로는 통하지 못하는 시대임으로 이 복음화라는 것은『스스로 복음으로 화신한다』는 뜻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말하자면「복음 보따리」를 보물처럼 장엄하게 전달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자기 자신이 복음으로 화신하는 길을 통해서 온 세계를 그리스도화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으면 목자가 긴 장대를 집고 온순한 양떼들을 몰고 가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운 이미지로 떠오르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오랫동안「목자와 양떼」라는 것이 교회의 지도이념으로 통해 온 깊은 전통과 권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잠시 복음서의 그 페이지를 접어 두고 딴 페이지를 펼쳐 보자는 뜻인 것 같다.
거기에는「땅의 소금」이라는 말씀과「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이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은 확실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시대가 요구하고 갈망하고 있는 말씀이다. 어둡다, 부패했다는 말이 여기 저기서 들리는 이때에「빛」이나「소금」처럼 필요한 것이 또 어디 갔을까?「복음」이란「기쁜소식」을 뜻하는 것이라면 이 세상 어디엔가「빛」이있고「소금」이 있다는 소식보다 더 기쁜 소식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것으로「복음」의 뜻을 풀이한다면 그것은「빛과 소금으로 화신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것이 아마 우리 시대에 알맞은「전교」일 것이다. 그러므로 미사가 끝난 다음에『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됩시다』하는 편이 우리들 가슴에 더욱 울려올 것 같이 생각된다.
무슨 까닭에 재래식의「전교」혹은「선교」라는 것이 곰팡이가 슬게 되었나를 좀 더 생각해 보는 게 좋겠다.
현대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자유」에 대한 강한 의식이다. 현대인은 인격의 자유가 무엇보다도 귀중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다. 자유는 인류가 지향하는 가장 높은 목표의 하나이며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위대한 능력의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의 자유가 이처럼 확대됨에 따라서 책임도 같은 비례로 무거워지며 목표가 뚜렷이 보이지 않으면 부패와 혼란에 빠지기도 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상태가 현대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일단 자각한 자유로부터 후퇴하지 않는다. 즉 그들은 권위와 전통에 억압 당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라는 소리가 들린 지도 이미 오래다. 권위와 전통은 인간 구제의 수단의 하나이고 자유는 인간 구제의 목적의 하나이다.
인류가 많은 희생을 바치고 이미 달성한 자유를 손상시키는 구제 수단이라면 마땅히 은퇴시켜야 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이것은 아마 인류 역사는 항상 전진하여 새로워지고 있으니 거기에 맞춰서 구제 방법도 새롭게 하라는 뜻인 것 같다. 항상 새롭고 싱싱하게 자라나는 생명을 녹 슬고 낡아 빠진 도구로 다스리자면 뜻대로 되기보다는 안 되는 일이 더 많을 것이요 따라서 허탈감과 좌절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렵고 답답하더라도 자유를 이미 각성한 인류를 구제하는 길은 자유를 바탕으로 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훌륭하고 놀라운 방법은 천주께서 이미 쓰신 방법 즉「인간으로 화신하신」(Incarnatio) 방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신학자들과 성인들의 가르침이 있으니 그리 미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좀 더 인간적인 방법을 예로 드는 것이 좋겠다.
그것은 유명한 쏘크라테스의「산파술」이다. 사람마다 진리를 마음 속에 잉태하고 있으니 쏘크라테스는 그 산모가 안전하게 출산하도록 도와 주는 산파 역을 한다는 생각이다. 자연인으로서 인간을 이보다 더 높이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존경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진리는 페인트나 고약처럼 겉에 바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산고를 겪으면서 출산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말의 뜻은 인간은 모두가 하느님을 잉태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씨는 이미 뿌려져 있으니 다만 정성들여 가꾸기만 하면 충분하다. 복음화라는 것은 천주의 일을 대리한다기보다는 인간의 일을 도와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겠다. 인간 속에 숨어 계신 천주를 밖으로 나오시게 하기 위하여 인간을 산모처럼 조심조심 받들어 모시는 일이「복음화」의 일이 아닐까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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