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나는 고해성사 보던 습관도 주일날 미사 참예하던 기쁨도 교리책을 읽던 열심도 심지어는 천주께 기구 드리는 흥미도 차츰 없어지기 시작했소. 그리고 어머니는 물론 주임신부를 비롯해 모든 신자들을 위선시했고 내 어머니와 친한 모든 사람을 적대시했고 미워했소』
『내가 15세 되던 어느날 그러니깐 중학교 2학년 때<길거리에서 주워온 애비 없는 ○○년의 자식>이란 어머니의 노기찬 말을 듣고 나는 비로소 내 생의 기원과 비밀을 알았소. 그때 나는 놀래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소. 알아야 했던 진리를 발견한 일종의 기쁨을 느꼈소. 그리고 어머니가 왜 나만을 못 살게 구박한 이유도 깨달았으며 나도 이젠 어머니를 정면으로 공격하고 대항할 수 있는 정당성을 가졌다고 생각했소.
그 후부터 나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머니를 최대한으로 괴롭혔고 어머니가 나 때문에 괴로워할 때마다 복수란 승리가 주는 쾌감을 느끼기도 했소』
『이 모든 일은 우리 집안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고 나를 친자식처럼 사랑해 주시던 아버지를 괴롭히는 결과가 되었소. 집에 돌아오시기만 하면 아버지는 나 때문에 어머니와 늘 언쟁을 하셨으며 또 이웃 사람의 화제의 대상이 되는 등의 심적 고통을 받아야만 했소.
그러자 나는 나 자신이 아버지가 사랑하는 이 집안의 평화를 파괴하는 위험한 존재임을 알게 됐고 또 어머니를 백만 번 미워해도 아버지의 심정을 추호도 괴롭혀 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소.
그래서 곰곰이 생각한 결과 이 집을 떠나기로 작정했소. 어느날 어머니와 싸움하고 동생들을 속시원하게 때려 준 다음 나는 아버지에게 집을 떠나는 이유와 감사의 뜻을 전하는 몇 마디의 글을 남기고 새벽녘에 돈 한 푼 없이 방랑의 길을 떠났소. 그때 내 나이 16세』 『이집 저집 문전에서 걸식하며 나는 평양에 도착했소. 어떤 날 굶주리고 기운 없이 어느 길 모퉁이 풀밭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소.
누가 나를 깨웠고 그분은 40세 전후로 보이는 인상 좋은 아주머니였소. 그분은 과부로서 천석꾼의 지주 집에서 식모로 일하로 있었소.
나는 그 아주머니의 소개로 그날부터 그 집의 머슴이 되어 집안의 잔일을 맡아 일하게 되었소. 내 새 주인은 이름 있는 친일파의 아들이었으며 일본 정부의 보호와 혜택을 단단히 받고 있었소.
그의 집은 대궐 같이 화려했고 30대의 어린 나이에 첩을 몇 명씩이나 데리고 살고 있었소. 그는 사치와 방탕으로 소일하고 있었으며 자기 소작인촌에 자그마한 소학교를 세워 주었다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존경도 받고 있는 듯했소.
그 집에 살면서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또 하나의 세계를 발견했소. 여지껏 나만을 위해 어머니와 싸워 온 세계의 범주를 떠나 계급으로 구분된 사회와 사회 간의 투쟁의 세계를 발견했소.
그리고 이 계급사회의 모순은 인간이 제정한 사회 제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 사회 제도는 강한 자를 위해 약한 자를 희생시키는 도구로 사용돼 왔음을 인정하게 되었소』
『내 주인은 매년 가을이 되면 추수를 감시하기 위해 촌에 내려가 소작인과 지내기도 했소. 주인은 자기 첩들에게는 한없이 후했으나 소작인들에게는 사정없이 냉정한 사람이었소.
그 당시의 지주제도를 보아 소작인들은 전 추수의 반인 50%를 지주에게 바쳐야만 했소. 일제(日帝)에게 공출을 바치고 나면 농민에게 돌아오는 것은 너무나도 적은 것이었소.
어느 해 주인을 따라 촌에 내려가 본 일이 있었소. 그때 나는 소작인들의 빈곤한 생활을 처음으로 알게 됐으며 한 마디로 내 주인의 사치와 방탕의 값이 이 불쌍한 농민들의 피땀 나는 노력과 고통의 대가라고 생각하니 내 주인을 미워하게 되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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