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핑계를 잘 한다. 잘못하고도 핑계를 대고 별다른 이유도 없이 적당하게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든다면「병이 났을 땐 주일미사에 참여하지 않아도 좋다」라는 계명을 핑계 삼아 손가락만 좀 아파도 성당엘 안 간다든가 자기의 의무를 소홀히 하면 양심의 상태가 제대로 형성이 못 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가벼운 이유로서 사실악을 악으로 생각하지 않거나 중한 것을 중히 여기지 않는 경향 등이다. 즉 상당한 이유도 없이 법을 피하거나 악을 가볍게 하기 위해 지나치게 자유의 편을 드는 것 등이다.
이런 양심을 분류한다면 ①낙인이 된 양심(Conscientia Cauteriata)은 극도의 욕심이나 그러한 이유로 죄악의 습성 때문에 대죄도 예사롭게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디모테오 전서 4장 2절에 있는 거와 같이「그들의 양심은 죄악의 낙인을 받은 자들이니라」는 것이다. 즉 쇠붙이로 연장을 만들어 불에 달구어 피부에 찍으면 그 자리에는 감각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②바리세이적 양심(Conscintia Pharisaica)은 옛날 예수님 살아계시면 바리세이파 사람들은 거짓된 양심을 가지고 경한 것은 중히 여기고 사실 중한 것은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마태복음에는(23장 24~25) 이런 말이 있다.「소경으로서 인도하는 자들아 너희들이 모기는 건져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겉 꾸미는 학자와 바리세이들아 너희에게 앙화로다. 너희가 잔과 접시의 거죽은 닦되 너희 속에는 토색함과 더러움이 가득하도다」
그러기 때문에 위에 말한 종류의 양심을 가진 자들은 일부러 과욕하고 해이해진 양심을 따라 경솔한 부주의로 중대한 과오를 범한다.
이런 경우에 큰 죄를 면치 못한다.
예수께서 가장 싫어한 것이 바로 바리세이적 양심이고「회칠한 무덤이라」고 극언까지 하셨다. 속은 검은 먹칠을 하고 악으로 가득 차고 썩어 가면서 밖으로만 깨끗하고 가장 착한 척하는 사람들은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누누이 말해 왔다.
오늘날 신자들 중에서도 자기만이 착하고 자기가 가지는 신앙이 참된 것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장 정직하고 가장 거룩하고 가장 신자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교만과 과장된 자애심으로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것이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라도 겸손치 않으면 잘못을 범하기 쉬운 것이다.
양심은 바로 이런 경우를 위해 판단을 해 주는 판관이기 때문에 잘 형성되어야 하고 옳게 형성된 양심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