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른 새벽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다정한 얼굴들로 배가 닿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이는 아는 얼굴을 찾아내어 환성을 지르기도 하고 성급하게 안부를 묻기도 했다.
대대장과 나도 찾고 있었다.
벌써부터 둘이는 아무 말도 없이 사람들을 훑고 있었다. 그러나 내 뇌리에 썩 떠오른 그 얼굴은 다소곳이 풍부한 감정을 지닌 외모를 준비한 그런 어린 소녀여야 했다. 왜냐하면 내 내부에 형성된 차니는 아베 마리아의 우아한 멜로디와 대대장의 추억으로 해서 그런 모습으로 짙게 색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너무 늦게 말하는 것 같지만 한마디 한다면 나는 대대장처럼 귀족적인 면을 전혀 지니지 못했을 뿐아 니라 미세한 살균제 분말처럼 눈에 안 보이는 뭔가가 나를 자꾸 침투하고 있다는 단순한 열등감이 고집스럽게 자리하고 있어 어떤 경우 자기를 잊는 방법으로 허세적인 위엄을 갖출 뿐이다. 그러므로 감정이 풍부한 어떤 인물에 내가 부딪쳤을 때 무난히 잘 어울릴 수 없으리란 점에서 사관생도 생활 중 늘 불안해했던 하나의 약점이기도 한 동시에 아무쪼록 나의 모든 것이 다른 사람에 의해 지배되어 주기를 은근히 바랐었다. 허기에 내 눈이 닿는 각도는 내 생각 속에서 이루어진 차니에 있었다.
『차니야!』
대대장이 드디어 발견했던 것이다. 어느한 지점을 향해서 그는 힘껏 소리치며 팔을 흔들었다.
그 얼굴은 기쁨에 싸여 황홀한 환희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옆에서 머쓱했다.
내 눈에는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차니가 안 보였기 때문이다.
내 차니는 어디에 있을까?
나도 무턱대고「차니야」하고 소리쳐 볼까 부다.
좀 쓸쓸했다.
나는 한 번도 집 식구들의 전송이나 마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집 식구였던가, 차니였던가, 하여튼 나는 나를 마중나와 준 차니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다부지게.
그랬는데 역시 차니는 대대장 혼자의 차지였으며 나의 차니는 그림자도 비추지 않고 내 의식 속에서만 꿈틀댔었다. 덜 자란 유충의 안타까운 몸부림처럼.
『어서 내리자!』
배가 닿자마자 대대장은 서둘러 출구로 밀고 나갔다.
나는 그때 강한 질투심으로 해서 어쩔 줄 몰랐다.
앞서가는 그가 의식하고 뒤돌아 볼 만큼 강열하게 나는 대대장을 미워했으니까.
그러나 마음 속 깊이깊이 질투의 뿌리가 뻗쳤다고 하더라도 악의 없이 돌아보는 그에게는 다소곳해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라고까지 그는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차니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의의는 없다고-.
그 깊이 없는 샘물은 누구에게나 목을 축여 주는 신선한 역할을 한다고 그렇다면 내가 대대장 생도를 안중에 두는 건 석연한 일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여늬 때처럼 아무의 마중도 받지 않고 다시 배에서 내려 설 수 있는 그것 자체가 선명한 내 모습일 수밖에 없었고 또 그렇게 되는 게 어색하지 않은 나였다.
나는 변덕스럽게도 갑자기 가벼워질 수 있었다.
덧없는 희망 같은 것이(무엇인지조차도 모르면서) 내 얼굴에 미소를 띄게 해 줬다.
그래서 뒤에서 밀치락거리는 아가씨에게까지 나는 웃어 준 것이
『그래 잘 있었어?』
아버지와 딸처럼 조금도 어색하잖게 차니와 대대장은 서로 포옹하고 나직히 말들을 주고받았다.
『응 삼촌 나 졸업했어』
『그래? 언제?』
『어제』
그들의 대화는 아닌 게 아니라 조용하고 맑았다.
내가 생각했던 달콤한 연인 같은 냄새는 조금도 맡을 수 없었다.
다만 그건 신선한 과일 냄새 같은 것이었다.
차니는 그밤에 본 것보다 더 작아 보였고 더 몸집이 조그맣게 보였었다.
어쩌면 아직 걸음마를 갓 시작한 어린 아가처럼 그렇게 주먹만큼 한 한 몸을 선택했는지 이런 것은 내가 알 영역의 것이 못 되었지만 하여튼 조그만 하다는 데 더욱 짙은 향기를 간직한 것 같았다.
『인사해 내 후배야. 유진우』
동공이 크게 열리던 서서히 웃음을 밝혔다.
그리고 그녀는 강한 빛을 발해서 내몸을 휘감는 것이었다.
『아? 나, 이분 알아요』
그녀는 계속했다.
『송편을 먹으려고 했던 분예요』
『네 맞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그녀가 나를 기억하고 있는 데 몹시도 대견스러웠다.
그녀의 의식 속에서 나는 아베 마리아를 즐긴 것이다.
그것이었다.
아주 작은 돌멩이라도 잔잔한 연못에 던지면 파장은 끝간 데 없이 번진다.
그러나 나는 그런 작은 돌멩이를 수없이 수용할 수 있는 넓은 호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자만일까?
자꾸자꾸 동그라미는 그려지고 물가에 닿은 물결은 아마 물거품으로 혹은 포말로 혹은 아무런 변화 없이 다시 밀렸던 것이다.
이것들은 어느새 한 가지만 사연을 간직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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