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요 소설가며 시인인「체스터톤」(G. K. Chester Ton)은 성 토마스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황소를 찻잔에 담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면서『성 토마스에 대해서는 단지 하나의 설계도 마치 미궁(迷宮)의 도시를 설계하는 것과 같은 것밖에는 만들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실상 위대한 철학자요 신학자며 전 유럽에 알려졌던 교수며 한 수도자요 나아가서는 성인(聖人)이신 그분의 생애와 사상을 짧은 지면에 소개하는 것은 무리하다고 생각되며 더구나 참으로 토마스를 아는 분은 그분을 전체적으로 소개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자체에 무명의 한 신부로서 성인의 폭 넓은 생애와 깊은 사상을 소개하는 것은 참으로 외람된 일이며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교회 박사인 성인은 제2차 바티깐 공의회에서도 재확인을 하고 가톨릭 고등교육의 표준으로써 내세우고 있고 신학교에서도『구원의 신비를 온전히 밝히기 위하여 학생들은 성 토마스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사변 방법(思辨方法)을 이용하기를 원하고 있다. 또한 교황 바오로 6세께서도「그레고리안」대학 강연에서『교수들은 교회 박사들의 말을 존경하여 들을 것이니 그들 중에서「토마스 아퀴나스」는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천사적 박사」인 그의 재능은 놀라운 것으로서 진리에 대한 순수한 사랑 지극히 높은 진리를 탐구하고 밝히며 가장 적합하게 서로 연결시키는 지혜가 출중하여 그의 가르침은 신앙의 기초를 안전하게 구축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교회 안에서 이러한 위치에 있는 성인은 교회 내에서의 명성과는 별도로 그분에 대해 외부에서는 너무나 알려지지 않았기에 유치원 어린이가 교수의 사상을 전하듯 단편적인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성인은 이태리「나포리」에서 멀지 않는「로카섹가」성에 1224년 말(혹은 1224년 초?)에 출생하였다. 그는 문자 그대로 제왕의 문벌 속에 탄생하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그의 종형(從兄)이었고 소위「붉은 수염의 황제」는 그의 백부였고 프레데릭 2세는 그의 재종형(再從兄)이었다. 그의 모친은「놀만디」의 제왕을 친척으로 하고 있었다. 그가 원하였더라면 그는 유럽의 일부를 차지하였을 것이다.
몸집이 크고 황소 같이 순종하고 동작이 느리고 묵묵한 그는 학생 시절에「시실리의 벙어리 황소」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벙어리 황소」는 느닷없이 폭발하듯『천주교란 무엇입니까?』하고 갑자기 교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가 어릴 때부터 천주께 대한 이런 의문과 이에 대한 답을 촉구하였기에 그의 부친은 당시 교회와 국가 간의 알력이 심하여 그것을 해소하는 정책상으로 6살이 된 그를 가까운「몬테ㆍ카시노」성베네딕또 수도원에 보내어 공부하게 하고 그를 장차 그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 후 그는 나포리대학인 문학과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당시 새로 수도회로 발족한「도미니꼬」탁발수도원에 입회하게 되었다. 이것을 알게 된 그의 부친과 가족들은 대경실색하였다. 당시 교회에서는 가장 이름 있는「몬테ㆍ카시노」대수도원장 직을 바라고 또 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그가 이름 없는 한낱 새로운 구걸 수도원에 입원한다는 것은 마치 대감의 장남이 시골 하인의 딸과 결혼하겠다는 것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마스는 화려한 대수도원장의 주인직보다는 평범한 수도자를 원했다. 이것은 당시 귀족 사회와 교회에 대한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는 사건이었다. 토마스는 도미니꼬 수도회의 총장과 함께 시끄러운「나포리」를 떠나「빠리」로 피신하고자 여정에 올랐다. 그러나 격분한 그의 형제들 이종간에서 그를 납치하여「로체스카」섬에 감금하고 말았다. 수도복을 벗기고자 하는 그의 가족들에게 처음엔 반항하였으나 나중에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는 생각하기를 철학을 하는 데는 지하실이거나 감옥이거나 상관없다고 생각하였다.
야비한 그의 형제들이 그의 방에다가 성장한 고급 매춘부를 들여보내 그의 마음을 돌리고자 하였으나 화가 난 그는 타는 불덩어리를 대검처럼 휘둘러 그 여인을 쫓고는 안정된 마음으로 그의 사색을 계속했다. 그는 말하기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논증(論證)을 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계시종교가 필요하다고 한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공명정대하게 논증할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만일 정직하게 논증하자면 어떤 때는 그 주제가 한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스스로 논증하기를 결심하였다. 정직하게 논증하고 모든 사람에게 논증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고 모든 일에 관여하기로 결심하였으므로 도서관 하나를 채울 정도로 책을 저술하였다.
「벙어리 황소」의 울음을 어렸을 때도 교사들 청년 시기에는 가정과 국가 교회에 파문을 던졌고 고의 묵중한 사상의 발효는 인류를 움직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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