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믿음의 보증이요, 소망의 담보요, 사랑의 충동입니다.
죽은 듯이 대지 속에 묻혀 있던 온갖 생명을 일깨워 주는 봄 햇살과 같이 슬픔과 괴로움과 죽음의 무덤 속에 묻혀 있는 우리를 새로운 생명과 기쁨으로 일깨워 주는 천상적인 봄 햇살이 바로 부활입니다.
슬픔과 괴로움의 십자가가 다하는 곳에 영원한 승리가 있고 죽음이 다하는 곳에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오늘 배웁니다. 세파에 시달리는 우리의 인생고는 그대로가 승리를 위한 지름길이요, 절망과 죽음도 그대로가 부활에 이르는 관문임을 깨우쳐 줍니다. 기쁨의 소식은 슬픔과 괴로움을 거스려 싸우는 이의 마음 속에 새로운 인내와 용기를 심어 줄 것이며 죽음 앞에 다가선 이의 마음에는 새로운 삶의 즐거움과 희망을 용솟음 치게 할 것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승리와 부활로 되찾은 새로운 생명에로 우리를 초대하는 날이며 다시는 죽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즐거움과 희망을 보장하시는 날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믿음의 보증이요, 우리 소망의 담보요, 우리 사랑의 충동입니다.
우리 믿음의 보충입니다
코린도전서에『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아니 하셨다면 우리 설교도 헛되고 너희 신앙도 헛되어 우리는 거짓 선교사로 인정되나니라.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아니하셨다면 너희 신앙이 헛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은 우리 논리나 추리를 뛰어넘는 위대한 신비로 차 있습니다. 상·하의 구별 없는 전체 인류를 대신하기 위해 가장 천하고 가난한 인간으로 태어나셨다는 그의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자칭하는 인간의 아들(人子)이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이때까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진리였으며 가르칠 때는 하느님의 권위로써 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천주성과 그 가르침의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의 모든 가르침과 업적은 인류 구원이라는 목표 앞에 잘 정돈되고 통일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비로 가득 차 있는 그의 전 생애가 십자가의 죽음만으로 끝나고 부활에까지 이르지 못했던들 그리스도와 관련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그리스도와 관련된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명확히 보증하는 기적 중의 기적이요 그리스도를 인류의 참 구세주로 재천명하는 장엄하고도 새로운 선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었으므로 해서 그 생애의 통일성과 의미가 새삼스러워지는 것이며, 그 인격의 신비성과 권위의 수수께기가 풀리는 것이며 구속사업 전체를 관철하는 무한한 하느님 사랑에 대한 결정적인 해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모든 가르침과 업적에 대한 하느님의 권위를 재확인하는 보증을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부활은 그의 모든 가르침을 믿을 만한 것으로 받아들일 신앙의 확증이 되는 것이며 믿지 않을 수 없는 의무에로 우리를 강박합니다.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많은 이들이 혼연히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증명한 그리스도의 부활이며 우리들마저도 필요하다면 생명으로 지켜야 할 참 신앙의 보증이 되는 부활임을 잊지 맙시다.
우리 소망의 담보입니다
코린도전서에『만일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희망이 현세에만 그친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불쌍한 자들일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기를 싫어하고 살고 싶어하는 이유는 결국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하는 욕구 때문입니다. 비록 당장의 즐거움이 없다 해도 내일의 즐거움을 기다리는 희망으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사람은 즐겁기 위해 살려고 합니다만은 현실은 너무나도 익살스럽습니다. 원하는 즐거움 대신에 싫어하는 고통만으로 우리를 맞아 줍니다. 삶의 이유가 되는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고도로 발달된 문명의 혜택도 균형을 잃은 현 사회제도하에서는 도리어 빈부의 극심한 차이를 벌려 놓았고 따라서 계급과 민족의 갈등이 끝날이 없으며 여전히 기아와 빈곤 속에서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이 문명의 혜택에서 배척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합리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증오는 투쟁으로 발견하고 투쟁은 전면전쟁으로 번질지도 모른다는 검은 먹구름 같은 세계 기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中略)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안팍은 어둡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 어두움을 물리치고 답답증을 풀 단 하나의 길은 부활의 신비를 나 안에 되새기는 것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거두신 승리에 참여하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고독과 번민을 불안과 공포를 거스려 싸웁니다. 승리를 약속 받은 고통과의 싸움이라면 부활을 약속 받은 죽음이라면 우리의 현실이 비록 괴롭고 죽음의 위협을 당한다 해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가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위에서 죽읍시다. 그때 그리스도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요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 희망 속에서 기뻐하고 환난 속에서 살아가는 길이 올바른 크리스찬의 길입니다. 성 바오로께서『그러므로 우리는 실망하지 아니 하노라? 현재의 가볍고 짧은 순간의 환난은 비할 데 없는 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기 때문이니라. 우리가 목적하는 바는 이 유형한 것이 아니라 오직 무형한 것은 영원한 연고니라』하셨습니다.
우리 사랑의 충동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마음 속에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을 당신께로 당기십니다. 벗이 그 벗을 위해 생명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신 그리스도께 우리로써 할 바가 무엇이겠습니까?『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당신 생명을 버리신 여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인식하였으니 우리도 이와 같이 형제를 위하여 생명을 버려야 하리로다』라고 하신 요한사도의 말씀을 따라 주기까지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써 먼저 받은 그리스도 사랑에 보답해야 하겠습니다.
(中略)
그래서 성 바오로께서도『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나느 이미 죽었고) 그리스도가 나 안에 사신다』고 하셨으며『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에로 재촉하신다』고 하셨습니다.
1974년 부활절 서울교구장 추기경 김수환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