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부활이 죽음을 넘어 산 이들에게 심어 준 희망이 없었던들「죽음의 행진」을 이겨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죽음의 행진」길에도 부활은 예외 없이 찾아오는 법.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을 여름옷을 걸친 채 강냉이와 시래기죽으로 연명해야 했던 한반도 북단 중강진, 하창리「납북 성직자 수용소」에도 봄은 찾아와 양지 바른 비탈에도 풀잎이 싹트며 부활절은 찾아왔다.
1950년 괴뢰군의 서울 점령 후 서울서 체포된 까르멜수녀들을 비롯한 일군의 성직자 일행이 7월 15일 서울을 떠나 평양을 거쳐 만포 고산진 중강진 후창리 등지를 전전하며 보낸 납북생활 3년간 그 죽음의 수용소 안에서 맞은 부활 그것은 곧 희망이었다.
이들이 납북길에 첫 부활을 맞은 것은 하창리서 4개월을 보내고 1951년 3월 30일부터 그 해 10월 8일까지 두 번째 머무른 중강진에서였다.
조금은 인심이 있어 보이는 수용소장 덕분에 숨을 쉴 수 있었던 이곳에서 낮에는 밭에 나가 풀을 뽑고 돌멩이를 골라 내는 비교적 쉬운 일과를 보내면 남은 시간은 자유롭게 보낼 수 있었지만 손 꼽아 기억해 온 부활을 마음 놓고 노래할 수는 없었다.
『달력이 없어 날짜를 모르고 지낸 적이 많지만 부활절은 밤 하늘에 뜨는 달을 보고 계산해서 알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감시병의 눈길을 피해 성사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날 아침 우리는 서로「예수 부활」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부활 축하를 대신했지요. 그러면서 그 부활의 진정한 기쁨이 우리에게 있기를 마음 속으로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생(生)사(死)가 순간에 교차되는 질곡의 납북생활 끝에 본국으로 송환되었다가 다시 한국에 와 여생을 보내고 있는 까르멜수녀회「마리 알리엣」(75) 수녀의 회고에서 느낄 수 있듯.
그러나 고통 중에 맞는 부활의 기쁨에 대신해 이들이 바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이들은 두 번째 부활을 51년 10월 11일부터 52년 8월 12일까지 묵은 만포진에서 맞았다.
51년 성탄을 콩과 강냉이 튀긴 것으로 축하할 수 있었던 이들에게 불과 함께 맞는 부활은 들려오는 휴전 소식과 더불어 지난해 부활보다 조금 나은 희망 속에 맞을 수 있었다.
게다가 성 금요일(聖金曜日)에는 북괴가 인심 쓰듯 보내 준 빵 1천 개가 수용소에 도착해 있었으니 입(口)까지 약간은 즐러운 부활이었다고나 할까. (이 빵은 수용소 소장이 너무 아끼다 변질되어 다 먹지도 못했지만)
이런 가운데 죽음이 부활을 준비하듯 이들에게도 부활은 다가오고 있었으니 그것은 이듬해인 1953년 4월 17일의 석방이었다.
이들은 53년 3월 27일 본국 송환을 위해 평양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거지나 다름없던 이들에게 옷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제공되고 살기등등하던 감시 장교의 얼굴이 미소마저 띄우는 가운데 한 장교가 다가와 말했다.『오늘은 당신들이 가장 축하하는 부활절인데 차려드릴 만한 것이 없어 미안하군요. 대신 제가 구해 온 이 맥주로 축배라도 드십시요』
어쩌면 신자였을지도 모를 이 괴뢰군 장교가 주고 간 맥주를 들면서『그리스도는 모두에게 부활의 기쁨을 주시는 분』임을 재삼 느낄 수 있었다고「마리앙리엣」수녀는 20년 전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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