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 바로 여기에 당신들과 우리들의 차이가 있소 당신네들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으나 우리는 실현 가능성을 목전(目前)에 두고 오늘이라는 현실을 창조하고 있소.』
『천만의 말씀, 동지가 내세우는 공산주의도 당신네들의 우주관과 인생관에 대한 일종의 이상인데 이 이상이 지상 위에 완성되리라고 동지는 생각하고 있소? 그것은 하나의 망상이요. 공산주의 경제 체제와 사회제도를 제 아무리 완벽하게 이 세상에 실현시켰다 하더라도 사실은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지만, 미움과 질투와 분노와 교만과 탐욕과 이런 것에서 파생되는 갖가지 악을 완전하게 없앨 수는 없을 것이며 따라서 거기에도 불안과 모순과 부조리와 희생과 무시와 굴욕 속에 고민하는 인간 사회가 존속할 것이요.. 이러한 상황 속에 동지는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가 실현되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소?』
『…….』
『김 상위 동지,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직도 이 세상에 세워져 있소. 그분의 인류 구속사업의 완성을 기다리는 이 과정에서 우리들이 책망하는 악스러운 이 인간을 부조리한 이 사회 이 미움 이 불의와 부정, 생명을 파괴하는 저주스러운 이 전쟁 등은 인류와 함께 이 세상에 존속할 것이요. 그래서 예수님의 구속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교회는 이 세상에 존속하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사랑과 용서와 평화와 하나로의 결합과 상호 협조정신에 끊임없이 전 인류를 부르고 있소.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이웃 형제들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일해 오고 있으며 또한 그들의 고통과 슬픔과 불행을 같이 나누며 살고 있소. 지금 이 지상에는 수없이 많은 주교 신부 수사와 수녀들이 인류에와 인간 개개인의 복지를 위해 청춘을 불사르며 몸과 마음을 고스란히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하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의 헌신적인 자선사업과 희생을 모르는 바 아니요. 나는 그런 분들을 깊이 존경하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예수가 설교한, 소위 말하는 복음적 사랑은 인간 사회에 현존하는 이 사회적 악의 참된 원인인 봉건적이며 자본주의적 계급사회의 체제를 절대로 변혁시키지는 못할 것이요. 천상적 행복에 삶의 목적을 두고 현세의 악과 불행을 피동적으로 참아 받는 당신네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생의 태도는 어쩌면 사회악의 조장(助長)과 발전을 고무하는 결과가 되기 쉽소. 다시 말해「왼뺨을 때린 사람에게 오른뺨을 대 주고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벗어주며 원수를 사랑하라」한 예수의 이러한 사랑이 약자를 착취하는 강자를 위한 오늘의 이 악스러운 사회제도를 존속시켜 왔다고 나는 생각하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사회를 개혁하는 혁명을 시작했고 계속하고 있소』
『동지의 말은 내 마음을 찌르고 있소. 남달리 큰 인생 시련과 고뇌를 겪어 온 동지의 이러한 결론적 말이 너무나도 인간적이라 해도 나는 그 말의 뜻만은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소. 그러나 제도상의 개혁만이 인간의 고뇌와 비참과 불행 등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하오. 개혁이나 혁명 이전에 인간 개체를 존중하는 마음의 태도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보오. 즉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실천하신 사랑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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