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렇소. 그러나 사회제도상의 개혁이 급선무라는 것을 강조했을 뿐이요. 그에 대해 예를 들어 말해 봅시다. 여기서 위생적으로 불결하고 보기에도 비참한 한 채의 집이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 집에 살고 있는 가족은 가난에 쪼들리고 병들어 있다고 가정합시다. 당신네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왜 집이 이처럼 불결하고 비참하며 그들의 병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어 제거하지 않고 병든 그들에게 위로품과 식량을 갖다 주며, 우리는 예수의 말대로 불쌍한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요. 그러나 우리들 공산주의들은 우선 그 집에 살고 있는 병든 이들에게는 다소 해(害)가 된다 하더라도 그들의 병의 원인이 되고 있는 그 불결스러운 집을 헐어 버리고 그들의 병을 치료하며 상처를 수술하는 한편, 그들이 인간다웁게 살 수 있는 생활 환경을 마련해 주고 있소. 이처럼「이웃을 사랑하라」라는 그리스도교적 사랑을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사랑은 잠시 그 사람의 고통이나 불행을 덜어 줄 수는 있어도 그에게 내일이라는 미래를 보장한 행복의 터전을 마련해 줄 수는 없을 것이요. 사람을 구제하는 진정한 방법은 인간 개인의 불행이나 비참에 대한 일시적 동정이나 자선적 행위에 그칠 것을 만들어 주는 데 있다고 우리들 공산주의자는 생각하고 있소. 그래서 우리들은「수술」이라는 본래의 사회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혁명부터 시작하고 있소』
『동지의 말은 아름답소. 그러나 동지는 인간의 품위를 좀먹는 약의 원인을 사회적 제도 안에, 또 경제적 체제 안에서 보고 있군요. 물론 동지의 이론에 진리의 일부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으나, 악의 참된 원인은 그런 제도나 체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요. 악의 참된 원인은 우리들 마음 안에 있는 것이요. 즉 원죄로 말미암아 진과 허위, 미와 추, 사랑과 미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의 마음 속에 있소. 다시 말해, 진을 허위로, 미를 추로, 사랑을 미움으로, 선을 악으로 이용하는 인간의 마음 안에 악의 원인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요』
『동무는 원죄라는 이름 아래 악의 존재성을 영원시하고 있군요. 그것은 하난의 비겁이며 인간의 이성과 의지에 대한 모독이요. 원죄론을 내세우는 등 이성과 의지에 대한 모욕이요. 원죄론을 내세우는 동무의 이론을 따라 말해 봅시다. 예건대 영원으로 흐려진 상태에 있는 하나의 냇가가 있다고 합시다. 당신네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천주의 나라에서 복된 맑은 물을 마실 것을 기다리며 체념 상태에서 그 흙탕물을 마시는 데 만족하는 것이 당신네들의 생의 태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의 나라라는 내세를 믿지 않은 우리들 공산주의자들은 동무들과는 반대로 이 냇가에다 제방을 구축하고 저수지를 만들어 청수기계(淸水機械)를 설치하고 물을 소독하고 맑게 한 다음 각 처에 수로를 만들어 누구나가 다 마실 수 있도록 배수하고 있소. 바로 여기에 동무들과 우리들 간의 현실 참여와 내일을 위한 보다 밝은 사회 건설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요. 이것이 또한 새로운 문명과 문화를 건설하자는 우리의 이상이요 의지요 또한 노력이요』
『동지의 말은 감동적이요. 그리고 동지들의 그러한 노력 앞에 경의를 표하오. 그러나 동지가 꿈꾸는 새로운 문명과 문화를 상징하는 그 제방과 저수지, 그리고 그 청수기계와 배수를 위한 수료제도가 제 아무리 완전하게 설비되어 있다손 치더라도, 이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교만하고 악하고 불의스럽다면 그 시설은 정당하게 운영되지 못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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