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후 1년여 스스로 취임한 도서관장직과 스스로 선택한 전교사의 생활이 바빠서 세월 흐르는 것도 모르고 지냈지만 그 1년동안은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체험하고 맛보는 시간이었다. 하느님의 사랑은 수녀님을 통하여 왔고 그러한 수녀님의 사랑은 있을수 없는 추억의 순간들로 나의 뇌리와 마음에 새겨졌으며 20년 가까이 흐른 오늘까지도 그때의 그사랑을 기억하며 감사의 정을 되살리고 혼자 중얼거린다. 『수녀님 고마워요』라고.
군대에서는 재생해서 사용할 수 없는 폐품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여 제대를 기다리는 환자였지만 활동은 자유로운 내과환자였기에 마음대로 병원전체를 전교구역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래 기관지가 약한 사람은 감기를 친구와 같이 가까이하는 처지인지라 유행성 감기에 걸려서 진짜 환자가 되어 침대에 누워있었다. 마침 병원에 들리셨다가 내 모습을 보고 측은해 하시고 돌아가신 수녀님께서 다음에 방문하시면서 내게 사랑의 선물을 가지고 오셨다.
조금 감기기가 가시고 환자 병실장들의 모임이 있어 병원 본부에 갔다가 돌아와 보니 내 침대위 책상위에 보자기에 쌓여져있는 물건과 메모가 있었다.
『시베리오씨 살짝살짝 끌르십시오 그리고 아무도 주지말고 혼자만 잡수십시오. 안칠라 수녀드림』수녀님의 명령대로 살짝살짝 보자기를 풀어 헤치니 그속에는 찜통속에 마늘과 닭을 넣고 삶은 보신닭이들어 있었고 그 곰국의구수한 냄새와 함께 수녀님의 내게대한 깊은 사랑의 향기가 내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가정을 가진 주부라도 음식을 만들어들고 다니기가 어려운 일인데 수도자가 그것도 본원에서 생활하는 수도자가 이 곰국을 만들기위하여 얼마나 눈치를 보았겠으며 장상들이나 동료들에게 어려운 부탁을 드려야 했겠는가를 생각할 때 단순한 보신닭이 아니라 바로 수녀님의 사랑을 먹는 기분이었다.
그 곰국을 보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져왔고 훌쩍거리면서 그 곰국을 먹었다. 그 눈물은 이제까지 굶주림과 갈증을 느끼고있던 사랑의 충족을 얻은데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던 것이다.
그 보신닭의 사건으로 나의 머리 속에 한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그전까지는 항상 수녀님께 감사하는 마음이었고 언젠가 나의 형편에 변화가 온다면 수녀님께 힘 닿는대로 갚아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보신닭 사건으로 인하여 수녀님의 내게 대한 사랑은 갚음이 가능한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수녀님께서 내게 주신 것은 물질적인 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못되는 값진 사랑인데도 혹시 내가 어떤 물질적인 선물이나 조금 드리고서 사랑의 채무를 벗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평생 수녀님께 채무자로 살아야 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제대를 하고 헤어지면서 수녀님께 선언을 해버렸다.
『수녀님, 수녀님께서 제게 베풀어주신 모든 것은 하나도 수녀님께 되돌려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약속을 하겠습니다. 수녀님께 받은 그 뜨거운 사랑을 수녀님이 아닌 제 3자 즉 저와 같이 외롭고 사랑에 목마른 사람에게 나눠주겠습니다. 그것이 크리스찬의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살아가는 제 모습을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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