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르르 르르르…
멀리서 울리는 쓰리라미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네에, 안녕하세요. 여기는 땅속 깊은 꽃씨 도서관입니다』
교환 아가씨가 상냥하게 대답했습니다.
『여기는 밤나무골, 잘들려요?』
『네에. 잘들립니다. 말씀하세요』
사실은 말소리보단 바람소리가 더 크게 들렸습니다. 어쩌면 눈보라 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밤나무골, 왕밤나무 망내요!』
『아, 안녕하세요. 그쪽은 눈보란가요?』
『네, 내 발목까지 눈이 쌓였어요. 그런데 길 잃은 꽃씨가 있어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름표 같은 건 없나요?』
『없어요. 있기는 있었던가본데 떨어져 버리고 끈만 달렸어요』
『그것 야단이군요. 무슨 색다른 표지가 없습니까?』
『그게 말이요. 이상도 하지. 잠자리 같은 날개가 달렸거든. 이것 혹시 잠자리씨가 아닌지 모르겠어요?』
『흐흐흐, 잠자리는 곤충이니까 씨가 없지요』
『하하하, 그렇군. 좋은 걸 배웠소. 그런데 요게 말이요. 크기는 꼭 땡삐만 한데 이 근처에서 통 보지 못하던 꽃씨라니까』
『가만히 계세요. 찾아 드릴께요』
교황 아가씨는 컴퓨터로 밤나무골에 부는 바람의 지도를 찾았습니다.
부활절 가까이에 부는 바람은 대개 정해져 있습니다. 그 꽃씨는 그 바람을 타고 왔을 것입니다.
『날개 달린 꽃씨라… 아, 여기 있다. 밤나무 아저씨, 그건 꽃씨가 아니구 나무씨군요. 단풍나무씨군요』
『아니, 그럼 이 씨는 어디서 왔지요?』
『멀리서 왔어요. 산꼭대기 샘이 있다는 말 들으셨어요?』
『우리 동네 시내물이 시작한다는 샘말이요?』
『네, 맞아요. 그 샘가에 단풍나무가 하나 있어요. 그 씨가 여기까지 날려왔군요』
『고마워요. 먼데서 오신 손님이니 대접을 잘 해야겠군요』
『축하합니다. 식구가 또 느셔서』
『고마워요. 다 아가씨 덕분이요』
전화는 찰깍 끊겼습니다.
그러자 또 전화가 르르르 울렸습니다.
『네에. 꽃씨 도서관입니다』
『누나아. 나 뭔가 이상해』
꽃씨인가 봅니다. 목소리가 아주 가냘프고 애띱니다.
『뭐 말이냐? 자세히 이야기해주련?』
『나 발까락이 간질간질해. 동상이 걸렸을까?』
『호호호. 따뜻한 땅속에서 동상이라니 머리는 어떠냐?』
『머리? 머리는 시원한 것같아』
『알았어. 너 말 안 듣고 까불다가 꺼구로 박혔구나!』
『누나아, 난 그럼 어떡해. 죽는거야?』
겁을 집어먹고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죽긴? 그 대신 너 벌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어야겠다. 때가 되면 알려줄 테니까. 그때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누나, 고마워. 안녕!』
『그래, 꿈 잘 꾸어라』
다음 전화가 또 걸려왔습니다.
힘에 찬 씩씩한 목소리가 귀속에 욍욍 울렸습니다.
『누나, 나 못 참겠어. 밖으로 나갈거야. 괜찮지?』
『너 개구리구나? 아직 일러서 안돼』
그때, 전화통 속에 다른 목소리가 섞여서 들렸습니다.
『어떤 놈이야, 이 추운데 머리를 내밀려고 하는 놈은? 얼어죽고 싶어?』
마침 지나치던 된바람의 사나운 목소리였습니다.
『아니에요. 잘못했어요』
개구리가 주눅이 든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것봐, 조금만 더 참으라니까. 모든게 다 때가 있는거야』
『알았어, 누나. 꼭 알려줘야 한다』
『그래. 꼭 알려줄께』
교환수 아가씨는 심심해지자 노래를 불렀습니다.
꽃씨야.
엄마 사진 잘 보아라
너도 자라 이 다음에
꽃을 피우면
엄마를 닮아서 이쁘게 피게.
엄마사진 열심히 안 본 꽃씨는
보면 안다 금방
밉게 피는 걸.
『어맛!』
노래하던 아가씨가 깜짝놀라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가씨가 앉은 의자가 갑자기 높이 치솟았기 때문입니다. 뭔가 밑에서 들어올린 모양입니다. 교환 아가씨는 컴퓨터를 쳐서 이 마을 자리를 알아보았습니다. 『이상하다. 여기는 벚꽃나무뿐인데?』아가씨는 머리를 흔들며 의자 밑을 보았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벚꽃나무 뿌리에 새싹이 돋아 의자를 올리민 것입니다. 꽃씨 도서관은 바쁘기만 합니다. 혼자서 관장하랴. 교환하랴. 고목나무에 새순 틔우랴 정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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