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입장에선 눈물이 앞선다. 사랑을 베풀러 왔다가 오히려 사랑만 듬뿍 받고 떠나게 되니 감사의 정 이루 형언할 길 없다』한국에서의 20년 사목생활을 끝내고 5월 8일 영국으로 떠나기 앞서 리처드 롯트(성공회 대전교구장·49·노대영) 주교는「체한 20년」소감을 겸손되이 털어 놓았다.
『젊은이들이 한국에 가서 선교사업을 하라』고 호소한 쿠퍼 주교(1933년에 내한 50년 이북으로 납치됐다 3년 만에 영국으로 돌아감)의 권유를 받아들여 노 주교가 한국에 첫 발을 딛게 된 것은 1954년의 일이었다.
아직 6·25의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인 그 당시 한국 성공회는 노(老)사제들로 외국 원조에 완전 의존한 상태였다고 노 주교는 술회한다. 20년이 지난 오늘날은 젊은 사제들의 활약상이 눈부시며 교회 자립정신도 점차 높아져 현재 60%가 자립하고 있음을 들려 준다.
이와 곁들여 노 주교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감안할 때 성공회 한국관구의 설립이 절실하다고 말한다.『교황 바오로 6세께서도 부활축일날 세계 20여개 국어 가운데 한국말로『부활을 축하합 니다』고 말씀하셨으며 영국대사관의 움직임 역시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다』고 지적한 노 주교는 관구 설립문제가 내년도에 열리는 전 세계 성공회 심의회에서 검토될 것이라고 한다.
가톨릭과 성공회 양교 관계에 대해 노 주교는『행정적 일치보다 믿음의 일치』를 강조한다. 노 주교는『가톨릭과 성공회 간에는 역사적으로 상호 의심이 깊이 뿌리 박혀 왔다』고 말하고 지난해 양교 간에 성체성사 교리와 사제적 교리에 합의를 본 것은 일치의 큰 진전이나 궁극적인 목표는『양교회가 상호 인정하는 주교제도와 양교회 신자들이 함께 영성체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하면서 이 문제는「로마」교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뚜렷이 밝힌다.
한국 가톨릭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 또는 참여도가 높은 것은 물론 내관적 테두리에서 벗어나 세계관을 가진 교회로 성장했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한국 미사경본이 라틴어 마디마디를 그대로 번역해 놓은 감이 들어 한국적인 맛을 느낄 수 없음은 아쉽게 생각한다고.
한국에서의 사목생활 20년 가운데 노 주교는 어렵고 고통스런 일도 많았지만 반면 보람 있고 잊을 수 없는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노 주교가 한국에 나온 지 얼마 안 돼 서울서 보육원을 맡고 있을 때의 일이다. 15세 가량 돼 보이는 한 고아 소년이 찾아와 자기도 신부가 되겠다고 졸라댔다 한다. 이 말을 들은 노 주교는 사제가 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도 아니며 아무나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타일러 보냈다. 그런데 그 후 10여년이 지나 이 고아 소년이 끝내 사제서품을 받았는데 그때의 감개를 노 주교는 결코 잊을 수 없단다.
대체로『한국인의 성격은 좀 급한 편』이라고 꼬집은 노 주교는 모든 신부들을 골고루 사랑하기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었음을 농담 섞어 털어 놓기도 했다.
목자로서의 사목생활 이외에도 외국인으로서는 남달리 한국 문학과 풍물(風物) 연구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많은 업적을 남긴 노 주교는 그동안「풍류 한국」을 비롯 시조 2백 60편을 영역했으며 한국 시조 선집「한국 민족사」영역 등을 통해 한국의 얼을 해외에 널리 전하는 데도 공헌한 바가 크다.
노기남 대주교의 성(姓)을 따라 노 씨로 성을 지었다는 노대영 주교는 노 대주교가 항상 자기를『사촌동생』이라 부르며 사랑해 주었을 뿐 아니라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자기에게 뜨거운 정을 베풀어 준 가톨릭 교회 여러 형제들에게도 안부를 잊지 않는다.『이제 영국에 돌아가면 감찰주교(EPISCOPALVISITOR)로 일하게 될 것 같다』는 노 주교는 한국이 그리워질 땐 언제나 다시 찾아오겠다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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