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거기엔 즉, 동지가 말한 그 새로운 문명과 문화 속에 세워진 사회에 또 하나의 새로운 악이 존재할 것이요. 다시 말해, 인간의 마음 안에 교만과 미움과 악과 불의와 탐욕과 시기와 분열심 등등이 있는 한 사람은 주어진 권리를 남용할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강자는 약자를 해롭힐 것이고, 이에 따라 봉건적이며 자본주의적「부르조아」폭정에 못지 않은「프로레따리아」의 폭정이 생겨날 것이요. 모든 사회적 혁명은 그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의 선(善)으로의 개심을 통한 내적 혁명으로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하오. 그렇지 않고서는 모든 혁명은 정치적 이념만이 다를 수 있는 일종의 제도상의 개혁이 될 뿐일 것이며, 거기에는 여전히 구악을 조롱하는 신악이 생길 것이요. 바로 이러한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양심상의 혁명을 제도상의 개혁보다 앞세우고,「회개하라」라는 하느님에로의 귀의(歸依)와「사랑하라」라는 사람의 혁명을 인간 개개인의 마음에 호소하셨던 것이요』
『동무, 우리의 화제는 또 결론에 도달했소. 동무의 말대로 우리의 이론적인 대화는 영원한 평형선을 걸어갈 것 같소. 다만 현실이라는 이 지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 그것은 다름아닌 인류 복지와 인간의 생활 조건 향상을 위해 각자 자기 이상(理想)에 충실히 살아갈 뿐이겠지요. 동무는 동무의 이념대로, 우리는 우리의 신념대로…이러한 과정에서 하나인 조국과 형제인 민족을 사랑하는 선의의 경쟁을 성실히 하는 마음의 자세가 우리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오. 단지 죽음을 앞둔 이 시점에서 내가 인간으로서 후회한다면, 그것은 공사주의 사상에 대한 내 고집과 집념 때문에 나를 사랑한 한 여인을 괴롭혔다는 것뿐이요. 나는 천주를 버리고 교회를 떠났음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소. 그리고 영원한 공산주의자로 동무 손에 총살 당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오. 그러나 내가 신봉하는 공산주의 때문에 나를 그처럼이나 사랑하던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과거의 내가 후회스럽소. 그리고 나 자신을 원망하게 되는군요…』
『애인이 있었군요…김동지에게도…』
『있었소. 그는 내 어린 시절의 소꿉동무였고 동무처럼 철두철미한 천주교 신자요』
『그럼 그녀는 지금 어디 있소』
『평양에 있었소. 그러나 지금은 종군 간호원으로 일하고 있소』
『요즘도 서로의 소식이 있소?』
『만주에 있는 야전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가 한 달이 넘었소』
『그녀는 어린 시절의 친구였다고 했는데, 동지가 집을 떠난 후 다시 만났소?』
『그러니까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6년 전이군요. 조국 해방이 되기 전에 가을 평양 거리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났소. 그때 그녀는 여학교 교복 차림이었소. 그때 우리 둘이는 서로 만난 것을 기뻐했으나 반면 서로의 변한 모습에 놀라기도 했소. 고향에 있을 때 우리 둘이는 같은 소학교에 다녔고 오빠 동생처럼 친한 사이었소. 내가 말없이 고향을 떠난 후 그녀는 나를 위하여 천주께 기구도 많이 했다고 말했으며 나를 위해 묵주신공을 매일 밤 바쳐 왔다고 했소. 특히 부활절 밤미사에는 잊지 않고 나를 위해 촛불 두 개를 들고 미사 참례를 했었다고 말했소. 그리고 언젠가는 꼭 나를 만나게 해 달라고 미사 때마다 영성체하며 기구했다고 합니다. 그날 나는 그녀에게 내 생의 비밀로부터 시작해 무신론적 공산주의자가 되기까지의 일체를 숨김 없이 이야기했소. 나의 진고백을 들으며 그녀는 울고 있었고 나도 그녀의 순정과 동정에 울었소. 그녀는 그 당시 아저씨 댁에 하숙하고 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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