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견뎌내다 못해 드디어 밤마다 위에 고요히 떠 있는 큰 덩치의 구축함을 상대로 강판에서 소릴 질렀다.
이 바다에는 메아리조차 없었다.
처음 안 사실.
바다는 모든 걸 끌어안을 뿐이지, 되돌려 줄 줄은 모른다는 것도 새삼스레 내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다 가져 가 버려라. 가져 가 버려라 넵류운이요. 나를 가져 가 버려라. 라고 나는 뛰는 심장에서 피를 솟구쳐 뿜으며 뇌까렸다.
비가 조용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전쟁터 치고는 너무 고요한 속에서 우리들의 배치는 진행되었었다.
그 고요가 오히려 섬뜩하게 몸을 움추리게 했고 등골에 땀이 배이게 했다.
이국 땅을 밟았다는 감상 같은 것은 절대 불허였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진지를 구축하느라고 병사들은 땀을 흘리며 통로를 닦고 있었다.
드디어 본부로 돌아와서 맥주와 씨레이션으로 이국에 원정 온 병사들답게 흥청일 수 있었다.
나는 장교 휴게실에서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뜻 밖의 우연에 몹시 놀라서 몸을 튕겼다.
장교 명단이 비치된 카드에는 분명히 대대장의 이름이 끼어 있었다.
즉 작전과 참모장교 대위 민훈기라고.
『민훈기 대위 혹시 해사 출신 아닌가?』
나는 맞은편 귀퉁이에 앉은 근무 하사에게 물어봤다.
만일 정확히 그라면 내겐 신기하게도 침이 삼켜지는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랫동안 구축함 한구석에 박혀서 차니 생각 때문에 가슴을 조였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쩌자고 월남까지 그 줄이 이어지는가? 그것도 오랫동안 사라졌던 옛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저번 작전에 큰 부상을 입고 지금은 나트랑에 입원 중이죠. 잘 아십니까?』
『음 내 선배야』
그동안 그에 관해서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대통령상을 받고 졸업한 그기 해병 장교로 임관되는 걸 본 졸업식 날 이후 결연히 나는 그를 잊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허긴 잊었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용감하게 해병대를 지원했을 때 후배들인 우리는 그에게서 검소한 삶을 배웠고 그 후유증으로 내 자신이 해병대를 택했으니까.
『모르셨어요? 대위님의 전적은 본국에서도 대단하게 신문을 장식했다던데요』
『그래? 금시초문이야』
『두 눈을 잃을 위험이 있다는군요』
『눈을?』
『대위님은 대단한 휴매니티입니다』
『어떻게?』
『바위산의 동굴 소탕이 작전 목적이었죠. 그곳의 베트콩들이 바로 산 밑에 있는 국도를 어지럽혀서 수송작전에 애로가 많았었죠. 순조롭게 작전은 진행됐어요. 작전이 거의 끝날 무렵에 어느 단조로운 동굴을 발견하고 화기를 드러내고 퍼부었죠. 그 다음 수색에 들어갔어요. 예의 수류탄 몇 개 까 넣는 건 상식 아닙니까? 동굴을 몰아 나오는데 대위님께서 뒤에 서셨죠.
나중에 들은 이야깁니다만 어린 아이 울음소리를 대위님께서 들으셨답니다. 그래서 어두운 동굴을 더듬고 다시 들어가서 기진해서 울고 있는 어린 애를 안고 나오는 길이었죠. 뭐 앞으로 보실 테지만 베트콩 그 놈들은 전장과 가정이 동시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중에도 생존자가 있었던 모양이죠. 소총을 갈겨댄 거죠. 급하게 굽은 동굴벽으로 몸을 피했지만 탄피가 옆으로 날아와서 양눈의 동자를 할퀸 거죠. 대원들이 총소리에 놀라 다시 들어갔을 때는 이미 베트콩은 숨져 있었고 민 대위님은 피투성이가 된 채 어린이를 껴안고 있었답니다. 지금 아이는 무사해요. 저희들은 그 작전의 큰 성과보다도 대위님의 정신에 나타난 인간애에 머리를 숙이고 있죠. 이런 일은 월남 파병 칠 년 만에 우리 부대에선 처음 있은 미담이군요. 물론 다른 케이스는 많습니다만…죄송합니다. 많이 지껄여서』
『아니 오히려 고맙네. 그 병원 주소를 아는가?』
『적어 드리죠』
거의 한 달쯤 지나서 우리들은 작전을 나섰다.
실전이 처음인 나도, 나의 소대원도 모두 긴장해 있었고 한편으론 자신을 보호해야 된다는 보호본능으로해서 기를 쓰고 쏘고 쫓고 뛰었다.
그러나 비참하게 눈 앞에 쓰러지는 적을 봤을 때 나는 짙은 슬픔을 느꼈었다. 왜 죽여야 하는가? 과연 내가 죽일 권리가 있는가? 그러내 내가 죽이지 않으면 적은 어김없이 내 심장에 총알을 선사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피를 봐야만 했었다.
어느 사탕수수밭을 정찰하고 있었다. 별안간 뻐꾹뻐꾹 하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총알이 날아왔다.
당장 내 눈 앞에서 내 부하가 비명으 지르고 넘어지는 걸 보자 내 눈에는 핏발이 섰다.
나는 미친 듯이 적을 쫓았다.
농장 중간에 위치한 초막은 우리들의 손에서 벗어날 길이 전혀 없었다.
내 소대는 작전 경험이 없었으나 훌륭하게 적의 진로를 차단했던 것이다.
삼십여 분 동안 실랑일 벌인 끝에 집은 폭파되고 엉금거리며 적들은 항복하고 기어 나왔다.
그들은 너무 빼빼 말라 있었다. 건강한 사나이들 무리라고 추산했는데 기어 나온 적은 의외로 여자들이 많았다.
겁 먹은 얼굴로 검은 이를 드러내고 침을 흘리는 할머니까지 낀 생포한 적은 모두 여섯이나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중의 어린 자매에게 포로라는 말로 올가미를 씌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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