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산의 한문 시문집은 아직도 번역을 통한 보급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다산 일가가 천주교를 신앙하여 순교자가 나고 혹은 귀양을 갔으며 다만 자신이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했지만 평생 신심에 쫓고자 하는 오뇌를 지녔다. 그런 만큼 그의「목민심서」의 시적 연장은 지역사회의 정의 구현과 가난하고 무력한 형제들에 대한 사람의 마음이었다. 이런 것을 광의에서 가톨릭시즘에 연관하여 음미하는 것이 부당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외에 정약전의「십제명가」이벽의「천주공경가」이가환의「경세가」최양업의「사향가」「천당이라」를 비롯한 여러 시편은 한글로 된 전교의 의도와 신앙적 명상 위에서 씌어진 것이지만 이조 후기 제가의 4·4조 운율에 따른 심혼의 정화로 서문예적 문헌이 된다.
<어화 벗님네야 우리 본향 찾아가세(사향가) 가사이다 가사이다. 천당으로 가사이다/이 울잖는 초목이요/여위잖는 꽃이로다/영영한 사랑이요 유유한 화평이라(천당이라)> 이러한 귀절들은 영원에 향한 영성의 노래로서 언어를 고르고 매만진 정성도 깃들여 있다.
문예사에서뿐 아니라 어문 발달사의 문헌으로서도 이조 말기 문화의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일제하에서는 정지용·이동구를 중심한 가톨릭문학운동이 30년대 문단에 제기된 일이 있었다. 이때 지용의 시들을 가리켜<후퇴다, 절대주의에 의탁이다 모더니즘의 방편이다 얼치기 신자의 실패상이다>하는 표현으로 비판하는 이들도 있는데 편벽된 단편들이라고 생각된다. 신앙을 가진 이후의 그의 시「유리창」「은혜」「나무」등은 그의 시의 발전적 변모였다. 가톨릭은 절대주의가 아니라 보편주의이며 영원주의이다. 그리고 얼치기 신자가 아니라는 자부는 어느 시대 신앙인들에 있어서나 자신있게 공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또한 해방 후에 지용이 실의에 빠진 것은 해방 전의 친일파들이 문단을 다시 지배하게 된 데에 큰 원인이 있었다. <일제시대에 날뛰던 부일문사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뱉은 것뿐이네 8·15 이후에 나는 불당하게도 늙어간다>(윤동주 원고집서) 이것이 시인 지용을 앗아간 시대적 부조리였다.
그러나 지용 이후 세대의 가톨릭 신자 시인들이 해방 후 문학계에 여러 명 등장했다. 시에서 구상·김남조·홍윤숙·성황마의에 여러 명이 더 있고 소설에서 한무숙·박경리·장용학·김의진, 아동문학에서 문단적 추앙을 받던 마해송이 있었고 지금 그의 후계들이 있다.
이에 이르러 74년 3월호「사목」지는 전면을 한국 가톨릭 문학 특집에 할애하게 되었다. 이 특집 속에는 몇 편의 가톨릭 문학론도 실려 있다. 이 이론들 속에는 재검토되어야 좋을 문제가 다음과 같이 제기되었다. <가톨릭의 본질과 문학의 본질을 결합하면「가톨릭문학」의 의미 내지 본질이 규정되리라는 형식논리란 실로 무의미하다.
가톨릭 작가가 쓴 작품이 선행하지 않고는 아무도 그 본질을 추상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본질을 추상적으로 제시한다는 것은 문학에서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진술 속엔 아직도 한국에선 가톨릭 문학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내포된다>(김윤식) 본질들의 결합은 형식 선행만을 주장하는 것은 문학의 절대우월주의이며 본질적 주제보다「발견으로서의 기법」에 너무 치우치는 문학관이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문학의 본질이 독단적 특수성을 지니거나 별도의 형식이나 쟝르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 신자인 문학인이 일반 문예 창작 원리에 가톨릭적 인생관 및 세계관으로 보완하는 것은 가톨릭 문학일 수 있을 것이다.
물질주의와 창일주의가 넘쳐나는 현대에 있어서 양심법 자유 사회정의 공동선 완성을 향한 구원의 역사, 영원한 가치 등을 작품 의도의 바탕에 까는 일이 가톨릭문학의 사명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가톨릭문학을 긍정하는 이로서도 신앙과 예술 사이의 갈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괴로와하는 태도로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보게 된다. 오히려 신앙과 예술 사이의 보완적인 조화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관념적으로 십자가를 지는 우울에서 뛰쳐나와 낙천적으로 형제애를 실천하는 신앙 태도가 오늘날 더욱 요청되는 것 같기도 하다.
끝으로 오늘의 한국 가톨릭문학 속에서 작품적 성과를 알아볼 수 있는 자료로서 구상의 시「초사의 시」와 한무숙의 소설「우리 사이 모든 것이」를 제시하고 싶다. 「초사의 시」에서는 전쟁이라는 사회적 극한 상황에 전개되는 끝없는 형제애의 진실이 있다. 「우리 사이 모든 것이」속에는 인간 가족과 애정을 근거로 하여「존재와 영원」에 관한 깊은 뜻이 그려져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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