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또는 연합제도나 중앙집권제도를 창시하지 않고 수도생활의 형식을 각 수도원에 일임하였다. 곳곳에서 베네딕또회 수도자들은 같은 규칙하에서 살고 있으나「모든 이 각자가 하느님에게서 특별한 은총을 받았다」고 말씀하신 성인의 의향대로 각 수도원이 다른 생활 방식으로 주님께 봉사하고 있다.「로마」에 제일 먼저 어떤 수도원들이 있었는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596년 그레고리오 대교황이 수도 선교사들을 영국으로 보낼 때에 성 베네딕또의 규칙서를 가져 갔으리라고 추측된다. 왜냐하면 600년경에 이미 영국에서 이 규칙서에 의한 수도원이 창설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창설된 수도원에서는 끊임없이 학문과 예술을 연구 개발하였으며 정신의 자유와 숭고한 박애주의 등 폭 넓은 교육을 시킴으로써 찬란한 수도원 문화의 기반이 되었다. 7세기경에는 불란서 곳곳에도 많은 수도원들이 창설되어 큰 발전을 보았으며 사회에 많은 공헌을했다.
임금과 주교들은 다투어 가면서 수도원과 성당을 짓고 재산과 토지를 제공하였다. 이리하여 수도회들은 교회뿐 아니라 문화면에서도 선구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성 마르틴」과 「빠리「의「성 테니스」는 대표적인 베네딕또 수도회의다.
672년에는 성 베네딕또의 유해를「몬테까시노」에서부터「르와르」에 있는 「플뢰리」로 모셔 옴으로써 이때부터 이 수도원은 순례지로 유명해졌다.
740년경에는 역시 독일(현재 스위스)「성 갈렌」수도회에서도 성 베네딕또의 규칙서를 받아들였으며 이 수도원은 독일에서 모든 베네딕또회의 정신적ㆍ종교적 지주가 되었을 뿐 아니라 수도적 관례와 문화적 활동을 잘 조화시킨 곳으로도 유명하다. 각 수도회에서 많은 수도자들이 사제가 되었고 학교나 서재에서 활약하였으며 다방면의 예술 및 기술 등을 연마하였다. 또 교회를 짓고 유해를 안치하며 교회의 성물들을 귀중히 보관하였으며, 전례책들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많은 서적들을 수집함으로써 문학계에도 공헌한 바가 크다.
이리하여 수 세기를 통해 베네딕또 수도회는 서방국가나 교회에서 독보적인 인정을 받았다. 수도원들은 너무나 많은 재산과 토지를 소유한데다가 아빠스는 마치 주교와 같은 권리를 누렸으며 큰 영향을 주었다.
수도자들은ㆍ교사 문필가 화가 선교사 등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이런 생활이 과연 성 베네딕또의 규칙에 입각한 것이었는지? 마침내 수도원의 질서는 흐려지고 세속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아니아네」의 베네딕또 아빠스는 아빠스 회의를 소집하여 수도자들에게 성 베네딕또의 규칙을 다시금 심각하게 상기시킴으로써 규칙에 입각한 생활, 즉 모든 것을 끊고 침묵하며 관상 기도생활을 통해 세속과의 격리를 강조했다.
수도원의 규칙생활이 점점 문란해지고 성 베네딕또 정신에서 멀어진 수도생활을 하게 되자 많은 수도자들은 수도원을 떠나 고독과 침묵과 엄재를 지키는 은수생활로 다시 돌아갔다. 동시에 유명한「몬테까시노」「클리니」「성 갈렌」「폴다」등 여러 수도원이 빛을 잃었을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 또는 영신적으로 퇴보하게 되었으며 수도자들은 영성문학은 물론 세속문학에도 참여하지 않고 수도원 학교들은 문을 닫았으며 책이나 예술 작품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수도원이 임금에게 이양되고 국가 관리로 넘어갔으며「로마」에서는 국가가 부유한 수도원을 통치하고 독일에서는 귀족 출신만을 받는 귀족 수도원이 되었으며 곳곳에서 수도자의 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다가 르네쌍스가 시작될 14세기 말엽에는 다시금 빛을 잃었던 베네딕또 수도회들이 재생하게 되어 본래의 성 베네딕또의 규칙과 정신으로 되돌아갔다. 특히 성 베네딕또의 얼이 담겨진「수비야꼬」수도원은 베네딕또회적 생활을 충실하게 이어왔다.
그러나 16세기에 이르러 다시 한 번 곳곳에서 수도원은 종교 개혁에 가담함으로써 혼란기를 치루어야만 했다. 당시 교회 및 수도원의 위기는 상상키 어려울 정도로 극심하였다.
또 18세기 말엽에서부터 19세기 초에 있었던 위기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지만 반면에 은총과 강복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반면에 은총과 강복을 갖다 주었다.
새로 수도원들이 창립되고 모든 수도원의 연합체를 조직하는 등 성 베네딕또의 규칙을 새로운 수도생활의 이념 속에서 실천하게 되었다. 오늘날 21개의 베네딕또회 총회원은 신부ㆍ수사 1만1천 명과 2만1천여 명의 수녀들이(73년 4월 통계) 성 베네딕또의 성규에 따라 하느님께 봉사하고 있다. 수도생활의 위대한 스승 베네딕또는 수도생활의 본질을 그의 숭고한 수덕을 통해 몸소 보여 주었으며 전례예식과 고요로써 완덕으로 나가는 길을 계시하였다.
성인의 위업이 혼란한 민족 이동시(時)에 세워지고 많은 위기와 시련을 겪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시대에까지 빛나고 있다. 무엇보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성인의 시대처럼-곧 수도생활의 요약이며 수도원의 과제이다. 즉 기도와 노동과 고독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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