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한국인이면서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의 어두운 구석으로 내던져져야 했던 혼혈고아들. 이들 혼혈고아들을 거두어 어머니의 따뜻한 정을 심어주고 있는 심호섭씨(엘리사벳ㆍ52)는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은 자신의 삶을 애써 평범한 것으로 돌리기위해 오늘도「침묵의 희생」을 감내하고 있다.
인천시 북구 부평 2동 276번지에 자리잡은 혼혈고아들의 보금자리「성원선시오의 집」에서 묵묵히「엄마」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심씨는 16년간의 희생이 남겨준 유일한 재산「혼혈고아들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가장 소중한 자신의 재산목록 제 1호로 삼으로 하루하루의 생활을「사랑쏟는 일」에다 바쳐오고 있다.
장성한 두자녀의 어머니인 심씨가 이들 혼혈고아들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남달리 희생정신이 강해서 또한유달리 봉사정신이 뛰어났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생활고에 허덕이던 심씨가 우연히 잡게된 운명의 끈이었으며 원래 타고난 모성애가 자연스럽게 연결된 기묘한 인연이었다.
70년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정신이상증세를 일으키면서 4식구의 호구를 떠맡아야 했던 심씨는 먹고살기 위해 들어갔던 인천 산곡동 사제관 가정부일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끈」이 될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고 술회한다. 당시 본당주임 김인선 신부(메니놀회)가 혼혈고아들의 미국입양을 시작하면서 자연히 그 뒷바라지를 하게 된 심씨는 김신부의 제의에 따라 전국의 기지촌을 돌아다니며 별생각 없이(?) 혼혈고아들을 모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껌팔이 구두닦이 동냥 넝마주이 등 사회의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버려진 혼혈아들이 결코 심씨의 모성애를 지나칠 수 없었다.
식구가 늘어나 도저히 사제관에서 고아들을 기숙시킬 수 없었던 심씨는 현재「성원선시오의 집」위치에 움막을 짓고 힘겨운 생활을 시작했다. 2년여에 걸친 움막생활을 미군부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면한 심씨는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의정부 다리 밑에 기거하는 혼혈고아들을 데려오기도 하고 알콜중독에 걸린 기지촌의 위안부를 설득, 그 자녀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병중인 남편(80년사망)과 두자녀의 수발도 틈틈히 해가며 고아들과 함께 생활해야한는 이중생활도 잘 꾸려나갔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무심코 던지는 짖궂은 이들의『엄마는 흰색인데 아이는 왜 검은색이냐』는 식의 질문은 가슴이 내려않는 수치감을 안겨주었으며 두자녀의 불평또한 큰 짐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엄마라도 있지만 여기있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지 않느냐』며 두자녀를 설득하면서 계속 혼혈고아들을 모으고 입양사업도 추진했다.
인천 부평 3동본당 최분도 신부가 성원선시오의 집을 관리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갔다. 특유의 충청도 사람답게 소와같은 저력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것이다.
『여기는 일반고아원과 달라 찾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고 말하는 심씨는『돈은 없으나 몸으로라도 때워야하지 않겠느냐』며 안타까와 하기도 했다. 한달 생활비만 6백만원 이상이 들어 늘 재정적으로 압박을 받고있는 성원선시오의 집은 혼혈고아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보금자리가 되고있다.
<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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