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례를 받으므로 제 2육군병원 가톨릭 환우회의 명실상부한 회장이되었고 그 회장직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상담실에 있던 모든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 책의 목록과 책의 내용을 간단히 적은 노트를 만들어 모든 병실을 순회하며 환자들이 읽기 원하는 책을 가져다주고 찾아오는 일을 시작했다. 피부과 병동의 나환자 병실에도 들어갔고 그들과 함께 바둑을 두고 그들이 끓여주는 라면을 나눠먹기도 했으며 결핵환자의 병실에도 들어갔고 정형외과 병실도 찾아갔다.
월남전에서 지뢰를 밟아 사지를 월남땅에 버리고 몸뚱이만 돌아와서 침대에 누운 환자들에게 책을 읽어 주었고 그들의 삶에 대한 의지가 나를 감동시켰고 환자들이 그 앞을 지나가기도 두려워하는 정신병동에도 거침없이 들어갔고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수녀님과 함께 전도사가 된 기분으로 책을 들고다녔다.
그러나 몇권 안되는 책으로 곧 부족을 느끼게 되었고 책을 모으기 위하여 노력하기로 작정했고 먼저 제대해 나가는 황우들에게 기부금을 받아서 책을 샀고 가톨릭신문과 경향잡지에 책을 보내달라는 둔한 글을 투고했고 그래서 실제로 많은 책을 모을 수 있었다. 몇달 후 4~5백여권의 책이 모이게 되었고 수녀님과 함께 멋진 책장을 만들어 책을 정리하고 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뭄에 목이 타는 대지처럼 메마른 스폰지가 물을 먹음듯 가톨릭 서적을 읽으면서 지식과 신앙을 쌓아갔고 환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신앙의 참뜻을 깨달아 갔다.
새로 지은 부대내 성당의 열쇠가 나에게 맡겨졌고 수녀님이 늦을라치면 주일미사를 위한 제의를 차렸고 오르간을 뚱땅거리면서 더욱 깊이 아버지 집에서의 편안함과 아버지의 신비한 사랑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미사해설을 하고 대구 의무사 부대교회의 재정관리를 맡았으며 마침내 수녀님은 67년 성탄을 앞두고 세례 대상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라는 특명을 내리셨다.
환자 5~6명을 모아놓고 교리를 가르칠 때의 그 기쁨. 그 떨리던 가슴은 한평생 잊을 수가 없었고 그 교리가 끝난후 세례 때의 기도를 다시 한번 되새겼던 것은 물론이었다.
또 하나 하느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나의 제대가 무작정 늦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하사관의 경우 공상(公傷)이든 질병이든 제대 특명이 내려왔으나 나의 제대특명은 무작정 오지 않았다.
병원 환우회의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에 다음 달에는 내려오겠지 하면서 1년을 넘어섰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육군본부에 문의한 결과내 제대특명은 상처 분류문제(질병 공상등의 구분)때문에 내 카드는 미결철에 철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제 갓 뿌려진 씨앗이뿌리도 내리기 전에 제대를 하고 현실이라는 비바람을 맞는다면 내 신앙은 떡잎으로 끝나는 발육 정지의 신앙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1년여의 병원생활에서 신부님과 수녀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교회의 현실과 나의 소명을 깨닫게 하고 그 소명을 실천할 수 있는 준비를 시킨다음 내 제대 특명은 내려왔다.
이와 같은 일도 하느님의 특별하신 섭리의 손길로 여겨졌기에 감사를 드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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