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도착、비산동에서 하루를 묵은 후 왜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신동공소에 들렀다. 이때 공소회장이 『왜관은 아직 정리가 안되었으니 며칠 더 묵어가라』고 붙잡았으나 바로 길을 떠났다.
왜관으로 들어오는 철길과 들판에는 온통 탄피와 괴로군 시체로 덮여 있었고 악취와 쇠파리떼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여군들의 시체도 즐비해 여군이 참전한 것을 알게 됐다.
성당에 도착하니 50여 일간 적의 관할에 들어가 있던터라 성당ㆍ사제관 건물은 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또 여기저기 시체들이 가매장된 채로 처리되어 있었다. 썩는 냄새가 진동해서 시체처리가 급선무였지만 시체치울 사람을 구할 수 없어 3일 동안 시체사이를 비켜서 다녀야했다.
왜관수복 후 고향에 돌아온 읍민들은 폭격으로 집이 대부분 파괴되어 있는 상태에서 부서진 집 위에 가마니를 깔고 생활하였다. 이런 판국에 성당사정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래서 우선 성당청소부터 해나갔다.
성당 지하에는 괴뢰군들이 군수품을 저장、못ㆍ유리같은 것들이 많이 있었다. 쓸만한 것들은 나눠주고 필요한 것들은 정리해 놓았다. 한번은 쓰레기를 소각하다가 헌가마니 안에 든 소총실탄이 연달아 터져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성당에 돌아온지 5일이 지나서야 옹기를 굽는 김야고보라는 신자와 함께 시체를 처리할 수 있었다. 총24구의 시체를 찾아내어 순심중학교 동편 공동묘지에 매장하였다. 이때 대구교구청년20여명이 봉사를 했다. 청소를 하다보니 한번은 헌 구두짝에 발목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었다. 시체매장이 끝난 후 사제관 뒷편에 파리가 들끓어 자세히 보니 시체반구가 매장되어있었다. 성당 앞 도로변 채소밭에는 두개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시체를 처리한 후에는 성당수리가 문제였다. 종각의 반은 어디론가 날아가버렸고 성당 위 함석은 뚫어져 형편없이 되어있었다. 성당지붕은 납으로 떼우고 급한대로 성당안팎을 정리했으나 전체적인 보수가 필요했다. 아직 전쟁중이었으나 전세도 호전되어 성당의 수리공사를 추진하였다. 천만원정도의 비용이 드는 성당수리계획은 자금문제 등으로 어려움에 부딪쳤다. 최덕홍 주교도 자금걱정을 하며 『주교가 못한 일을 어떻게 하느냐』며 반대했다. 나는 이에 대해 『왜관은 대구관문이다. 해야만한다』고 얘기했다. 본당유지교우들도 시기상조라고 난색을 표명했다.
나는 신자들에게 공사에 쓰일 식량정도만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그래도 그해는 풍년이어서 다행이었다.
한편 나는 목수ㆍ미장이ㆍ지붕수리공 고용을 주선하고 성당수리를 강행했다. 그런데 그렇게 고심했던 성당수리비용은 뜻밖의 일로 해결이 되었다. 일제말기부터 군부대와 인연이 깊은 왜관본당은 왜관 수복 후에도 끊임없이 군부대가 주둔하였다. 51년 2월이라 기억된다. 5백여 명의 벨기에부대가 밤에 들어와 주둔하기를 요청했다. 성당수리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던 때였고 사제관도 엉망이라 식복사가 자는 방에 불을 때고 거처하였었다.
이때 왠 외국인이 들어와 『쟈빵』하는 것이 아닌가. 대충 눈치가 『일본말을 할 줄 아느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본말로 먼저 인사를 하니 그 군인도 일본말로 자신을 종군신부라고 소개했다. 45세의 벨기에 신부로 아르겐스라고 밝힌 그 신부는 만주에서 14년、일본에서 6년을 지낸 경험이 있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몰랐으나 일본말을 하는 덕에 종군신부로 오게 되었다고 설명해주었다.
벨기에부대는 한국참전 지원보대로 대부분이 가톨릭신자였고 그중에는 세 사람의 동정녀까지 포함되어 희생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후 이 부대는 군의 사정으로 근 한 달을 주문하게 되었고 주일미사에는 군인들이 그레고리안 성가 합창으로 장엄하게 창미사를 봉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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