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주거지 가파르나움(마태4, 13~16: 마르1, 21 루가4, 31)
마태오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보다도 더 예수의 갈릴래아 전도를 강조하고 풍부한내용으로 전하고 있다. 그리고 갈릴래아 전도의 첫 보고를 예수의 거주지 확정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갈릴래아는 어떠한 지방이기에 예수의 전교활동의 주무대가 되었을까
솔로몬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되어 (B C935) 남왕조를 유다왕조, 북왕조를 이스라엘왕조로 부르게 되었을 때 북왕조의 최북방 지방이 바로 갈릴래아 지방이었다. 최북단에 위치한 북방변경이었으므로 북방의 이방 강국들의 침략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바빌로니아, 페르샤, 마케도니아, 에집트, 시리아의 침공을 차례로 받으면서 이 지방은 인종적으로나 종교문화적으로나 거의 이방인들의 지방으로 인정되어왔다.
갈릴래아라는 지명은 바로 「이방인들의 지방」이라는 뜻이다. 마카베오왕조때 시몬 마카베오(B C135)가 이 지방에서 이방인들을 무찔렀을때 순수한 이스라엘인들은 그 인구가 보잘 것 없었고(마카Ⅰ 5, 21~23) 기원전 80년에야 비로소 이 지방이 유대아인들의 손에 복구되어 유대아교를 회복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하여 기원전 63년에 다시 로마인들의 점령하에 들어가 예수시대에 이르렀던 것이다.
복음서가 쓰여지던 사도시대 66년~73년에는 외군들을 거슬러 유대아인들의 반란이 있었고 수많은 유대아인들이 학살되기도 하였다. 70년 에루살렘 멸망 후에는 팔레스티나에서 살아남은 유대아인들은 갈릴래아로 모여들어 난을 피하였다. 이러저러한 역사의 사연에서 일찌기 예언자 이사야는 이 땅을 두고 「어두운 밤의 행진」을 읊었었다:『그들은 억눌리고 허기에 지쳐 이 땅을 헤맬 것이다…. 위를 쳐다보나 땅을 내려보나 고통과 암흑, 그리고 답답한 어두움뿐, 캄캄한 밤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어두움이 있는 곳이 어찌 답답하지 않으랴』(이사8, 21~23).
갈릴래아 지방은 본시 이스라엘 12지파중 즈불룬과 납달리지파가 차지했던 땅이다 마태오는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서 「즈불룬과 납달리, 호수가로 가는 길, 요르단강 건너편 이방인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은 백성,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자라나신 고향 나자렛을 떠나 즈블룬과 납달리 지방 호수가에 있는 가파르나움으로 가셨다. 가파르나움은 게네사렛 호수 또는 티베리아스 호수로서 갈릴래야 바다로 알려진 갈릴래아 지방의 가장 번영을 누리던 항구도시로서 이곳에 예수께서 정처를 정하시고 활동을 전개하셨다.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되었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게 된 것이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하느님 나라가 예수에게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대로 천대받던 즈불룬 땅과 납달리 땅, 요르단강 건너편 「이방인의 지방」(갈릴래아)이 귀하게 여겨질 날이 온 것이다. 어깨에 주권을 메고 탁월한 경륜가로, 용사로 오시는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 이 땅에 오셔서 이 땅 사람들이 짊어진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를 부러뜨리시고 혹사하는 자의 채찍을 꺾으시고 무한한 기쁨 넘치는 즐거움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이사9, 1~6).
가파르나움은 가나에서의 혼인잔치 기적이후 가족과 함께 며칠 동안 머문 곳이며(요한2, 12)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의 집이 있는 곳이며(마태8, 14:마르1, 29:루가 4, 38) 여기에는 한 백부장이 세워주었다는 거대한 회당이 있고(마태8, 5~13 : 루가 7, 5) 그 백부장은 자기 집에 주님을 모실 자격도 없지만 한 말씀만 하셔서 중병에 걸린 자기 종을 고쳐달라고 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예수께서는 많은 기적을 보여주신 곳이기도 하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곳에 정처를 정하셨던 것이다.
나자렛은 좀 외떨어진 벽촌이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본부로는 적당치 않았다. 그런데 예수께서 「집에 드나드셨다」는 기사는 마태오복음서에서 네번(9, 28: 13, 1:13, 36:17, 25) 마르꼬복음서에 여섯번(2, 1:3, 20:7, 17:9, 28, 9, 33:10, 10) 나오는데 마르꼬는 그 집이 예수의 집이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 없이 어느 집에 들어가셨냐는 표현을 했고 그 집 중에서 10장10절의 집만이 마태오가 말하는 예수의집과 일치하는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런데 예수의 정처로 정하신 그 집은 과연 예수의 소유나 전셋집이었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볼만하다. 그러나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사람이다』
(마태 8, 20)라고 하신 말씀에 비추어보면 그 집은 예수의 소유가 아닌 것은 짐작할 수가 있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집을 당신집 삼아 살으셨는가. 그것도 아니라고 성서학자 베르나르 신부는 저서 「예수의 신비」에서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 가실 때는 복음서는 베드로의 집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베르나르 신부의 추리에 따르면 마태오만이 예수의 드나드신 집에 관하여 한결같은 표현으로 「그 집」이라했고 그 집은 가파르나움에 있는 마태오의 집일 것이라는 것이다.
세리였던 마태오가 제자로 뽑힌 후 예수께서 그 집에서 식사를 하셨다는 기사가 있은 후(마태9, 10) 마태오는 예수께서 드나드신 집을 늘 「그 집」으로 표현하였는데 「그 집」은 같은 집이며 「그 집」에서 세금을 물었고(마태17, 24~27)「그 집」에 살면서 전교활동을 펼쳐나가셨다.
그 외에는 베드로의 배를 집삼아 「그 배」를 본거지로 설교를 하시기도 하였다. 이때는 양부인 요셉은 이미 돌아가셨고 어머니 마리아는 아마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를 따라 다녔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의견이다. 이때부터 예수께서는 전도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먼저 말씀을 전하고(마태5, 1~7, 29), 행동으로, 구세주로서 나타나실 것이다(마태8, 1~9/34).
<서울가톨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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